수출차 수천대 실은 선박 화재 '이산화탄소'로 잡았다
현대차 수출 선박에 코나 등 2천여대 10㎝ 미만 간격 다닥다닥 붙어 대형피해 우려
물·분말 뿌리면 차량 피해 막대…30여대 전소된 뒤 이산화탄소 분출시켜 5시간 만에 진화
(울산=연합뉴스) 허광무 기자 = 수출길에 오르는 자동차는 공장에서 나오는 길로 곧장 선박에 실린다. 배에 실린 수천 대 차량은 채 10㎝도 안 되는 간격으로 다닥다닥 붙어서 주차된 채 바다를 건넌다. 그런데 이 배 안에서 불이 난다면?
이 아찔한 사고가 22일 울산 자동차 선적부두에서 일어났다.
이날 오전 10시 16분께 부두에 정박해 있던 5만7천772t급 바하마 선적 '플래티넘 레이'(PLATINUM RAY) 내부에서 불이 났다.
이 선박은 수출 차량 이송용 대형 선박(카캐리어 선박)이다. 길이 200m, 너비 32.3m 규모로 전체 12층 중 화물칸 5개 층에는 총 5천여 대의 차를 실을 수 있다.
이 선박은 미국 수출을 위해 지난 21일 오후부터 25일까지 차량을 선적하던 중이었다.
공장에서 갓 나온 차들은 부두 야적장으로 옮겨진 뒤, 다시 로로(Roll on Roll off·사람이 직접 차를 운전해 선박 경사판으로 차량을 싣고 내림) 방식으로 선적된다.
불이 났을 때 이미 배 안에 코나와 투싼 등 현대차 1천643대, 기아차 520대 등 차량 2천163대가 선적된 상태였다.
특히 불은 차량이 선적된 화물칸 1층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침 선적을 하던 작업자들이 휴식하던 때여서 내부에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그러나 선적하던 근로자와 외국인 항해사 등 3명이 연기를 들이마셨고, 소방대원 1명도 부상으로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차량이 10㎝ 이내 간격으로 고박(固縛,움직이지 않도록 붙들어 맴)된 채 선적된 상태여서, 불이 옮아붙으면 재산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불이 난 화물칸 내부는 온도가 90도에 이를 정도로 열기가 강해 소방대원들의 진입조차 쉽지 않았다.
이에 소방당국은 해운사 등과 협의를 거쳐 이산화탄소 소화설비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선박에 설치된 이 설비는 물을 뿜는 스프링클러와 유사한 개념으로, 이산화탄소를 분출해 불을 끄는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화재 진압 때 사용하는 분말 소화기는 미세한 분말이 광범위하게 퍼지는 특징이 있다. 물을 뿌려서 불을 끄더라도 강한 수압과 막대한 물로 '수손 피해'가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기계·전기 장치가 포함된 설비나 상품이 전시된 쇼핑시설 화재 등에 이산화탄소를 활용해 화재 진압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이산화탄소 분출로도 차량에 어떤 영향이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면밀한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불은 이날 오후 3시 21분께 모두 꺼졌다.
1층에 있던 차량 30대가량이 불에 탄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당국은 정확한 피해 규모와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해운사 측은 국제 보험에 가입된 상태여서, 선박과 수출 차량의 화재 피해에 대해서는 보상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배에 실렸던 차량은 모두 다시 지상에 내려서 피해 여부를 점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피해가 없는 차량이 다시 수출길에 오르게 될지, 혹은 다른 방법으로 처분될지 등에 관해서는 결정된 바가 없는 상태다.
hk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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