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사태 대비, 'EU시민 권리 확보'위한 '제2의 여권'
벨기에·프랑스 시민권 취득자도 크게 늘어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어떤 형태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되든 유럽연합(EU)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확보해 두려는 영국인의 '제2의 여권' 신청이 크게 늘고 있다. EU 회원국인 인접 아일랜드 여권이 특히 인기다. 아일랜드 시민권을 획득, 이중여권을 받아두면 '노딜 브렉시트(합의 없는 EU탈퇴)가 현실화해도 유럽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기 때문이다.
브렉시트에 불안을 느끼는 영국인들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자기방위에 나선 셈이라고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10일 지적했다.
런던에 사는 20대 영국인 남성은 아일랜드 여권을 신청하기 위해 현지 출신인 할아버지의 출생증명서를 친척들이 돌아가면서 사용했다고 말했다. 아일랜드는 양친이나 조부모 중 한 사람이 아일랜드 국적자면 외국에서 태어났더라도 국적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의 가까운 친척들도 이런 방식으로 모두 아일랜드 여권을 만들었다.
아일랜드 외무·무역부에 따르면 작년에 영국 본토로부터의 여권 신청자는 9만8천554명으로 전년 대비 22% 증가했다. 2015년까지는 4만명대이던 영국 본토인의 여권 신청자가 2016년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가 결정된 이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신청자격자가 많은 영국령 북아일랜드 주민의 신청도 크게 늘어 올들어서는 우체국에 비치해 놓은 신청서류가 동나는 사태까지 벌어진 것으로 보도됐다.
EU는 사람과 물자, 돈, 서비스의 자유로운 역내 이동을 보장하고 있다. 회원국 시민이면 원칙적으로 역내 어디 든 왕래와 거주, 노동이 가능하다. 영국도 그런 혜택을 누려왔으나 노딜 브렉시트가 되면 이런 권리를 당장 잃을 수 있다. 지난 4일에야 겨우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더라도 90일 이내 무비자 여행을 허용키로 하는 법이 유럽의회를 통과해 일단 위기를 넘기게 됐지만 이는 일본인을 비롯한 역외국에도 허용되는 조치다.
'제2의 여권' 취득은 노딜 브렉시트에 대비한 '사업계속계획(BCP)'으로서도 주목받고 있다. 영국령 북아일랜드의 한 의류메이커는 영국 국적의 사원들에게 아일랜드 여권 취득을 권장하기 시작했다. 영국령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국경은 하루 약 3만명이 왕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과 EU는 노딜 브렉시트가 이뤄지더라도 국경은 부활시키지 않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나 기업의 입장에서는 만일의 경우 국경이 부활할 위험에도 대비할 필요가 있어서다.
영국인의 EU 시민권 취득은 아일랜드 이외의 국가에서도 활발하다.
벨기에에서는 2016~2018년 3년간 영국인 2천900명이 시민권을 취득했다. 2015년 이전에는 매년 100명 정도였다.
브렉시트가 결정된 이후 현저히 증가한 것이 통계로도 확인된다. 프랑스에서도 영국인의 시민권 획득건수가 2015년 370건에서 2017년 1천700건으로 크게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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