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위치 바뀌었어도 99세까지 장수한 미국 할머니
(서울=연합뉴스) 이경욱 기자 = 심장을 제외한 간 등 몸속 장기가 일반인과 달리 반대쪽에 있었던 미국의 할머니가 무려 99세까지 생존했다가 세상을 떠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미 오리건주에 살았던 로즈 마리 벤틀리는 좌흉심(levocardiaㆍ左胸心)이라는 선천성 심장 이상 질병과 함께 내장 좌우가 바뀌어 있는 '좌우바뀜증'(Situs inversus) 상태에서 장수를 누린 세계 최고령자로 여겨진다.
그의 심장은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왼쪽에 위치해 있었다.
하지만 간이나 다른 복부 장기들이 일반인과 정반대로 몸의 왼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일반 해부학에서 볼 수 있는 신체의 장기 위치와는 반대였다.
미 포틀랜드 오리건 보건과학대(OHSU) 의대생들은 지난해 봄 해부학 교실에서 2017년 세상을 떠난 벤틀리의 시신을 해부하다 장기 위치를 파악하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미 일간 USA투데이ㆍCNN 방송 등이 8일(현지시간) 전했다.
OHSU 해부학 교실 조교수 캐머런 워커는 벤틀리 가슴에 있는 혈관들이 기형적으로 생겼다는 사실을 의대생들이 발견해 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기가 끝날 무렵까지 이런 변형이 어디까지 확대된 상태인지는 파악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벤틀리가 사망 직전 찍은 사진 등을 볼 때 그가 이런 희귀한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 채 99세까지 살았던 것으로 의료진은 보고 있다.
워커 조교수는 "소화관들이 몰려 있는 벤틀리 할머니의 복강(腹腔ㆍabdominal cavity)을 들여다보고 장기들이 완전히 뒤바뀌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며 "이런 모습은 본 적이 없으며, 학생들도 매우 놀랐다"고 말했다.
좌흉심(levocardiaㆍ左胸心)을 동반한 좌우바뀜증은 2만2천명에 한명 꼴로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싱가포르의학저널(SMJ)에 따르면 이 질병의 예후는 매우 좋지 않다.
이런 상태에서 70대까지 생존한 경우는 단 두 차례뿐인 것으로 확인됐다.
워커 교수는 벤틀리와 같이 심장은 정상 위치지만, 다른 장기가 반대쪽에 있는 상황에서 어른이 될 때까지 충분히 생존한 경우는 5천만 명 중 한 명일 것으로 추정했다.
이런 경우 심장에 이상이 있는 게 보통이지만 벤틀리의 심장은 전체적으로 상태가 좋았다는 것.
벤틀리 가족은 대학 측에 그가 겪었던 만성질환은 관절염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의 생존 시 장기 3개를 떼어 냈음에도 불구하고 맹장을 제거한 의사만이 그의 장기 위치 이상을 기록해 뒀을 뿐이다.
그의 부고에 따르면 5자녀를 둔 벤틀리는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을 즐겼고 남편 제임스와 반려동물 가게에서 일했다.
딸 루이스 앨리는 어머니가 생존했다면 이렇게 관심받는 것을 좋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머니는 이런 게 정말 멋지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남들과 다르다는 점을 알고 얼굴에 큰 미소를 지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벤틀리 시신은 남편에 이어 의대에 기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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