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벌 수장의 수도장악 욕심에 갈림길에 선 리비아
하프타르, 지지지역 확산에 자신감…"국제사회 행보가 변수"
(카이로=연합뉴스) 노재현 = 오랜 내전에 시달린 리비아가 '봄볕'을 보지 못한 채 다시 혼란에 휩싸일 위기에 놓였다.
지난 4일(현지시간) 리비아 동부의 군벌 실세 칼리파 하프타르 리비아국민군(LNA) 최고사령관이 자신을 따르는 병력에 수도 트리폴리 진격을 명령한 뒤 통합정부군과의 충돌이 격화됐다.
나흘 동안 양측의 충돌로 인한 사망자가 30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리비아에서는 2011년 '아랍의 봄' 여파로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몰락한 뒤 각종 무장세력의 난립으로 사실상 내전 상태가 이어져 왔다.
현재 유엔 지원으로 구성된 리비아 통합정부가 트리폴리를 비롯한 서부를 통치하고 있고 하프타르 사령관이 동쪽을 점령해 국가가 사실상 양분된 상태다.
통합정부는 2015년 리비아 폭력 사태를 종식하려는 유엔의 노력으로 구성됐다.
국제사회는 그동안 리비아 통합정부와 동부 군벌의 대립을 끝내기 위한 중재에 나섰지만, 성과는 기대만큼 크지 않았다.
파예즈 알-사라즈 통합정부 총리와 하프타르 LNA 사령관은 작년 5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중재로 파리에서 만나 연말까지 총선과 대선을 치르기로 합의했지만, 정국 혼란에 선거는 계속 미뤄졌다.
하프타르 사령관은 비(非)이슬람계 퇴역 장성 출신으로 2011년 카다피 전 정권의 축출에 앞장섰으며 2014년부터 비이슬람계 무장대원을 이끌고 이슬람주의 민병대 세력과 싸워왔다.
그는 "이슬람 테러세력으로부터 리비아를 구하겠다"며 혼란 정국에서 지지를 호소했다.
하프타르 사령관이 트리폴리를 장악하려는 시도를 오래전부터 품어왔다고 외신은 지적했다.
리비아 동부뿐 아니라 서부까지 차지하면서 명실상부한 국가 지도자로 등극하겠다는 욕심이다.
특히 이번에 트리폴리 진격 지시는 자신감을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프타르 사령관은 리비아 국토의 3분의 2를 장악하고 있고 작년부터 서부의 상당한 지역도 그의 영향력에 들어갔다.
그가 장악한 동부에서 이슬람 무장세력의 테러가 많이 줄고 생활 여건이 개선되면서 지지도가 상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LNA가 하프타르의 바람대로 트리폴리 장악에 성공할지는 불투명하다.
리비아 문제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7일 연합뉴스에 "이슬람계인 트리폴리 민병대와 미스라타(리비아 북서부 항구도시) 민병대는 굉장히 강하다"며 "하프타르가 단독으로 트리폴리를 점령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LNA 병력이 트리폴리 40∼50㎞ 앞까지 진격했지만 일단 트리폴리 주변에서 민병대와 소규모 전투를 이어갈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큰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는 이슬람 원리주의를 추종하는 무슬림형제단을 반대하면서 하프타르 사령관을 지지해왔다.
실제로 이집트군 전투기들은 이슬람 무장단체를 겨냥해 리비아를 공습한 적 있다.
이집트와 사우디 등이 이번에 하프타르 사령관을 지원한다면 LNA의 트리폴리 점령이 힘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터키, 카타르 등 친(親)무슬림형제단 국가들은 무슬림형제단계 인사가 주축인 리비아 통합정부를 지지해왔다.
특히 터키가 하프타르 사령관의 트리폴리 점령을 방관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유엔 등 국제사회도 리비아 통합정부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LNA의 트리폴리 점령이 현실화할 경우 난처한 상황에 부닥친다.
여기에 리비아 내 부족들의 행보도 주목된다.
앞으로 하프타르 사령관의 LNA나 통합정부 가운데 어느 한쪽이 확실한 우위를 잡을 경우 부족들이 강자에 붙으면서 '힘의 균형'이 깨질 수 있다.
noj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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