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산불] "무조건 아이들 먼저"…온몸 바쳐 학생 179명 대피시킨 선생님들
소방력 닿지 않자 밤새 진화 작업 벌인 강원진로교육원 교직원
1명 작업 중 뇌진탕으로 입원까지…"아이들 모두 무사해 다행"
(속초=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강원 동해안을 집어삼킨 대형산불이 4일 오후 고성에서 시작한 이후 뜀 걸음보다 빠른 속도로 속초시 교동 강원진로교육원으로 번졌다.
이곳에는 진로상담·체험교육을 위해 3일 도착한 춘천 봄내중학교 학생 179명이 2박 3일 일정으로 머무르고 있었다.
불길이 고성에서 속초로 넘어온다는 뉴스가 나오자 진로교육원 교직원들은 급히 학생 대피에 나섰다.
불은 빠르게 번져 아이들이 머무는 생활관 근처까지 근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타고 온 버스는 금요일 다시 학생들을 수송하기로 하고 이미 춘천으로 돌아간 탓에 대피 이동 수단이 마땅치 않았다.
직원들은 기지를 발휘해 도보 5분 거리 속초중학교로 아이들을 피신시켰다.
진로교육원보다 더 안전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이후 평소 거래를 터온 업체에 급히 연락해 대형버스 4대를 빌렸고, 학생들은 아무 사고 없이 다시 춘천으로 향할 수 있었다.
진로교육원은 학생들을 신속히 대피시켰지만 119에 신고를 해도 소방력이 빠르게 도착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직원 40여명은 건물 내 소화기를 모두 1층 로비로 모으고 소화전을 열어 호스를 연결했다.
불이 건물로 옮겨붙지 못하도록 외벽에 물을 뿌리는 등 사력을 다해 진화 작업을 펼쳤다.
때마침 화재 사고 경험이 많은 의용소방대원이 현장에 가세해 진화 작업에 힘을 보탰다.
모든 소화전을 사용하면 호스가 짧아 건물 구석구석에 물을 뿌릴 수 없었기에 소화전을 몇 개 덜 쓰더라도 호스를 길게 연결해 효율적으로 진화에 나서는 등 속도를 냈다.
하지만 산을 넘어온 불길은 건물 외벽을 덮쳤고 직원들은 가까운 교육지원청으로 대피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소방서에 여러 차례 신고했지만, 인근 가스충전소와 아파트 단지 진화 작업에 소방력이 집중돼 진로교육원까지 출동이 어려웠다.
직원들은 방진 마스크와 방독면으로 무장하고 다시 현장으로 향했다.
학생들을 모두 대피시켰으니 이제 건물을 지킬 차례였다.
때마침 충북 청주시로 출장 갔던 직원들도 현장에 도착해 손을 보탰다.
모든 직원은 다시 소방호스와 소화기를 손에 잡았다.
화마와의 싸움은 다음 날까지 이어졌다.
큰 불길은 모두 잡았어도 곳곳에 불씨들이 되살아날 것을 염려해 순찰조를 짜서 밤새 현장을 살폈다.
산불과 싸운 불면의 밤은 새벽 5시가 지나서야 끝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한 직원은 소방호스를 옮기다 머리를 다쳐 뇌진탕으로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진화 작업을 지휘한 서순원 강원진료교육원 교육과장은 7일 "무엇보다 학생들이 모두 무사히 대피해 다행"이라며 "모든 직원이 한마음으로 위험을 무릅써준 덕분에 건물을 지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강원도교육청은 이번 산불로 고성과 속초, 강릉지역 5개 교육기관이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했다.
임시 휴업령이 내려진 고성·속초지역 모든 학교는 8일부터 정상적으로 학사일정을 시작할 계획이다.
yangd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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