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박물관 '청춘 신성일, 전설이 되다' 기획 전시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신성일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그분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분이라고 부르면 거리가 먼 것 같고 '우리 서방'이라고 하면 좀 상스럽고, 같이 살았으니 남편이겠죠."
지난해 11월 남편 신성일을 먼저 떠나보낸 엄앵란(83)은 남편 호칭으로 말문을 열었다. 4일 오후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한국영화박물관 기획 전시 '청춘 신성일, 전설이 되다' 개막식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다.
엄앵란은 "그동안 사람들에게 슬픈 모습과 눈물을 보여주기 싫어서 줄곧 집에서 지냈다"고 했다.
"제가 강가에 사는데, 저녁노을만 지면 소리 없는 눈물이 납니다. 지는 해를 보면 나도 언젠가는 가겠지 하는 그런 마음이 들어요. 이 양반은 거기서 뭐 하고 있을까, 어떻게 그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갔을까 하고 소리 없는 눈물이 주르륵 나옵니다. 그리고 흐느낌이 나와요. 지독하게 사랑했다고 말하면 야한 것 같고, 55년을 살았는데 그 정이라는 게 가슴 깊게 남아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엄앵란은 남편의 생전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쳤다. 그러면서 "이제는 뭐든지 말할 수 있다"며 "유명한 사람과 결혼하지 마라. 남편을 볼 수 있어야지…"라고 했다. "지금 진달래, 벚꽃이 핀 것을 봤는데, 그 사람이 나를 데리고 드라이버를 시켜주고 장어 한 접시에 소주 한잔 먹었다면, 더 아름다운 추억을 가졌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사람은 너무 바빴고,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죠. 그 사람 인생이 너무 불쌍해요. 일만 하다 죽었어.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는 것도 큰 병이야. 너무 안됐어요."
엄앵란은 신성일과 첫 만남도 떠올렸다. "처음 본 것은 영화 '로맨스 빠빠'를 찍을 때였는데, 당시 신인이던 그 사람을 봤을 때 무를 숭숭 썰어 넣은 것 같은 깍두기 같은 남자라고 생각하고 속으로 얕봤죠. 그러다 카리스마를 발휘하는데 진짜 용감한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동백아가씨' 찍을 때 화투를 치는데 아주 눈치가 빠르더라고요. '머리 참 좋다, 저런 남자랑 살면 잘살겠네'라고 생각했죠."
영화 '가정교사'(1963)에 함께 출연한 엄앵란과 신성일은 '청춘교실'(1963)에 이어 '맨발의 청춘'(1964)이 공전의 히트를 하면서 스타 콤비, 흥행 보증 수표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두 사람은 이 영화를 통해 실제 연인 관계로 발전했고, 50여편의 영화에 함께 출연했다. 1964년 11월 14일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두 사람 결혼식에는 전국에서 수천 명 하객이 몰려 '세기의 결혼식'으로 불렸다.
"그때는 무조건 신성일과 엄앵란, 둘이 붙어야 흥행이 됐죠. 하루 24시간을 4등분으로 나눠 밤낮으로 영화사 4곳을 돌아다녔습니다."
고 신성일은 1960년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이래 50여년간 514편 영화에 출연하면서 한국 역사상 가장 길게 톱스타 지위를 누린 배우다. 이번 행사는 1960년대 신성일이 출연한 영화 등을 통해 신성일의 청춘 시절을 집중 조명하는 자리다.
영화 포스터 35점과 각종 사진 및 영상, 트로피 등은 물론 신성일이 소장한 결혼 앨범과 '맨발의 청춘'에서 신성일이 입은 흰 가죽 재킷과 청바지, 엄앵란이 입은 더블 단추 등도 복원 제작돼 전시됐다.
엄앵란은 전시를 둘러 본 뒤 "눈물이 핑 돌았다"면서 "남편이 이렇게 유명한지는 알았지만, 이런 대단한 곳에서 행사한다는 것이 영광스럽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저는 6·25 때 기차꼭대기에 붙어 이불 뒤집어쓰고 피난 갔던 사람이에요. 그런 제가 오늘날 영화박물관에서 와서 이렇게 떳떳하게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영광입니다. 영화를 전공하는 학생들이 이곳을 한 번씩 다녀가 꿈과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날 개막식에는 이장호·배창호 감독과 배우 안성기,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 등이 참석해 고인을 추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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