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만에 춘추관 찾은 반기문, 정계복귀 의사 묻자 "연목구어"
대선 경쟁상대이자 靑 함께 근무했던 文대통령과 미세먼지 문제로 '원팀'
潘 '춘추관 브리핑' 요청 靑 수용…潘 "외교보좌관 때 이 자리 섰던 기억나"
범국가기구 제안한 손학규 대표도 언급…"혜안에 존경 표한다"
(서울=연합뉴스) 박경준 기자 = "일부러 답변을 안 했다."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강력한 라이벌로 거론됐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21일 청와대 기자실이 있는 춘추관 브리핑룸을 찾았다.
문 대통령을 만나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한 범사회적 기구 위원장직을 수락한 입장 등을 발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이 이 기구의 수장을 맡는 것으로 모처럼 뉴스 초점이 된 데 맞물려 자연스럽게 그의 '정치적 행보' 여부에 대한 관심이 동반됐다.
브리핑 현장에선 실제로 '범사회적 기구가 성과를 냈을 때 정계 은퇴 결정에 변화가 있을 수 있나'라는 질문이 나왔다.
반 전 총장은 하지만, 미세먼지 문제와 관련한 물음에만 답했을 뿐 이에는 따로 반응하지 않았다.
입장 발표와 문답을 마치고 춘추관을 떠난 반 전 총장은 뒤늦게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답을 내놓았다.
반 전 총장을 배웅하고 브리핑룸을 찾은 김 대변인은 "나가실 때 여쭤봤더니 반 전 총장이 '잊어버리고 답을 안 한 게 아니라 일부러 답변을 안 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반 전 총장은 "그 이야기는 '연목구어'(緣木求魚·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함)"라면서 "이번에 만든 반기문 재단의 정관에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게 돼 있다"고 했다고 김 대변인은 전했다.
문 대통령과 반 전 총장이 만난 것은 지난달 21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방한 기간 연세대에서 열린 간디 흉상 제막식 때에 이어 한 달 만이다.
반 전 총장은 연세대 글로벌사회공헌원 명예원장이자, 인도 정부가 지난해 구성한 '간디 탄생 150주년 기념사업 위원회' 위원으로 이 행사에 참석했다.
두 사람이 문 대통령 취임 후 청와대에서 만난 거로 따지면 외교 현안 및 뉴욕 유엔총회 참석과 관련해 이야기를 나눈 2017년 6월과 9월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문 대통령과 반 전 총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 각각 민정수석과 외교보좌관으로 함께 청와대에서 근무한 바도 있다.
두 사람은 10여 년 만에 미세먼지 문제 해결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두고 힘을 합치게 됐다.
청와대에 근무할 때에 이어 오랜만에 춘추관 브리핑룸을 방문한 반 전 총장은 김 대변인의 안내를 받아 단상에 올랐다.
그 옆에는 반 전 총장의 최측근인 김숙 전 유엔 대사가 김연명 청와대 사회수석과 함께 섰다.
반 전 총장은 "2004년 청와대 외교보좌관으로 근무할 때 이 자리에 여러 번 서서 언론인과 대화한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브리핑을 하는 것이 적당한지 걱정했으나 마땅한 장소도 없고 해서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할 수 있나 문의했더니 다행히 좋다고 했다"며 청와대에 사의를 표했다.
미세먼지 문제 해결에 자신의 소임을 다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반영하듯 반 전 총장은 9분여간의 입장 발표에 기자들과의 문답을 더해 23분간 브리핑을 했다.
반 전 총장은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60년대 초 달 착륙계획을 발표할 때 '이 일이 쉬워서 하는 게 아니라 어려워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며 "미세먼지 문제가 난제라 이 일을 맡기로 했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경제 주체와 사회집단 간 이해가 엇갈릴 수 있으나 우리 모두 한 발짝씩 물러서야 숨을 쉴 수 있다"며 "인내와 아량으로 범국가 기구의 노력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또한 "저는 2007년 여러분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유엔 사무총장직에 오르는 영예를 누렸다"며 "이제 미약하지만 국민이 보내준 성원에 보답할 차례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반 전 총장은 범사회적 기구의 설치를 제안한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를 언급하며 "손 대표의 혜안에 존경을 표한다"고도 했다.
반 전 총장은 브리핑을 마치면서 "종종 이렇게 브리핑할 기회를 갖겠다"고 말해 다시 춘추관을 찾을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반기문 "미세먼지 문제에 정파 없어…망설였지만 중책 수락" / 연합뉴스 (Yonha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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