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손님 대피시키고 불길에 갇혀…목욕탕 화재 의인 이재만씨(종합)
경찰 "끝까지 남아 더 큰 피해 막아, 용감한 시민상 수여 예정"
(대구=연합뉴스) 최수호 기자 = 사상자 87명을 낸 대구 목욕탕 화재 당시 이 건물에 사는 주민 이재만(66)씨가 위험을 무릅쓰고 마지막까지 현장에 남아 구호 활동을 펼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불이 난 7층짜리 건물 5층에 사는 이씨는 사고 당일인 지난달 19일 오전 6시께 바로 아래 4층 목욕탕을 찾았다.
간단하게 몸을 씻은 이씨는 옷을 입은 뒤 남탕 탈의실에 있는 평상에 앉아 평소 알고 지내던 카운터 직원(77)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오전 7시께 갑자기 타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남탕 입구 문이 열리면서 목욕탕 업주가 다급히 뛰어 들어오다가 넘어졌다. 그 뒤로 시커먼 연기와 함께 거센 불길이 보였다.
불은 남탕 입구에 있는 구둣방 안 콘센트에서 전기적 요인으로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위급 상황인 것을 직감한 이씨는 곧바로 휴게실로 달려가 "불이야"를 외치며 잠을 자고 있던 손님 10여명을 깨웠다.
이씨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깬 손님들은 계속 잠들어있는 주변 다른 손님들을 깨웠다고 한다.
이씨는 이후 헬스장으로 뛰어가 대피할 것을 알린 뒤 목욕탕 안으로 다시 들어가 탕 안에 있던 손님들을 대피시켰다.
이후 습식ㆍ건식사우나까지 둘러보고 나오려는 순간 갑자기 입구 천장이 무너졌고 이씨와 다른 손님 1명이 그 안에 갇혔다.
화재로 전기 공급이 끊겨 온ㆍ냉탕과 샤워시설 등이 있는 목욕탕 내부가 순식간에 암흑으로 변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이씨는 타올에 물을 묻혀 얼굴을 감싼 채 바닥에 엎드렸다가 눕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점점 숨을 쉬는 것이 힘들어졌고 순간 "이대로 죽는구나"라는 생각이 엄습했다.
겨우 힘을 낸 이씨는 바깥 상황을 다시 살폈고 불길이 보이지 않자 탈의실 쪽으로 나와 남탕 입구로 간신히 대피했다. 함께 있던 손님 1명은 당시 탈출하기 위해 창문으로 뛰어내리다가 크게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가 남탕 입구를 빠져나올 때 소방관들은 발화지점인 구둣방 바닥에 호스로 물을 뿌리며 잔불을 정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화재 진화가 끝난 시간은 오전 7시 30분이며 이씨가 건물 1층 바깥으로 완전히 빠져나온 시간은 3분 뒤인 오전 7시 33분으로 확인됐다.
이런 사실은 사고 발생 후 경찰의 피해자 조사에서 이씨가 "사고 당시 구호에 적극 나섰다"고 진술하면서 밝혀졌다.
경찰은 진술을 토대로 최근까지 목욕탕 관계자와 다른 피해자들을 불러 당시 정황을 물어보고 건물 폐쇄회로(CC)TV도 분석한 결과 이씨 말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이에 이씨 덕에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판단해 조만간 용감한 시민상을 수여할 예정이다.
이씨는 "불이 났을 당시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한다는 생각만 떠올랐다"며 "앞으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면 똑같이 행동할 것이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의 헌신이 뒤늦게나마 알려져 다행이며 이로 인해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어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대구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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