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교실 늘린다더니'…탁구공 추첨하는 난감한 현실
"무기직 돌봄전담사 고용 부담" 경기교육청 돌봄교실 '동결'
추첨 떨어진 학부모 "아이 학원 '뺑뺑이' 돌려야" 푸념
(수원=연합뉴스) 이영주 기자 = "작년보다 학생 수는 훨씬 늘었는데 돌봄교실은 왜 늘리지 않고 그대로인 거죠?"
지난 29일 오후 3시.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광교신도시 A초등학교 시청각실은 돌봄교실 '탁구공 추첨'을 기다리는 예비 1, 2학년 학부모들로 붐볐다.
이들은 모두 맞벌이 부부로 이날 추첨을 위해 회사에 휴가를 내고 참석했다.
그마저도 어려운 부모들을 대신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주 손을 잡고 학교를 찾은 모습도 눈에 띄었다.
A초등학교는 작년까지만 해도 돌봄교실 3개를 운영해 맞벌이 부부 자녀들을 모두 수용했다.
당시에도 정원이 꽉 차는 바람에 학생 9명을 받지 못했는데, 학교와 돌봄전담사들이 협의해 학급당 3명씩을 더 받아줬다.
그런데 올해는 개학을 앞두고 인근 아파트 단지가 연달아 입주하는 바람에 학생 수가 예상보다 더 늘어 수용 한계치를 넘어버린 것이다.
1·2학년 통합 반인 돌봄교실 3개 학급(학급당 정원 최대 22명)으로 총 66명을 수용할 수 있는데, 올해 신청자가 121명에 달했다. 신청자 절반은 돌봄교실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다.
학교는 고육지책으로 학급당 3명씩 총 9명을 더 받기로 했지만, 수요에는 턱없이 못 미치는 수준이다.
두 아이 손을 잡고 추첨식에 참석한 학부모 이모(40)씨는 "정부 발표를 보면 분명히 돌봄교실이 늘어난다고 했는데 왜 이런 추첨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라며 "추첨 결과 떨어졌는데 앞으로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라고 걱정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작년에 1학년이 6개 학급 정도 규모였는데 올해 12개 학급까지 늘어난다고 할 정도로 학생 수가 급격히 늘었는데도 돌봄교실은 단 한 개도 늘지 않았다"라며 "교육청이 아무 일도 안 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돌봄교실 신청자가 넘쳐 추첨을 진행하는 진풍경은 이 학교뿐만 아니라 경기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특히 신도시 등 대규모 택지개발지역처럼 학생 수가 급격히 늘어나는 학교에서 비슷한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돌봄교실을 원하는 학부모가 이처럼 늘었는데도 학교에서 돌봄교실을 늘리지 않은 이유는 도대체 뭘까.
그 답은 경기도교육청이 세운 '2019학년도 초등돌봄교실 운영계획서' 안에서 찾을 수 있었다.
도교육청은 돌봄교실(오후돌봄 기준) 운영 기본방침으로 '이미 구축되어 운영하는 돌봄교실 수 이내에서 돌봄 수요 불균형을 조절'이라는 원칙을 만들었다.
이는 곧 돌봄교실을 추가하지 말라는 '증설금지' 원칙을 의미한다.
이런 방침에 따라 도내 초등돌봄교실 수는 작년 2천916실이던 것이 올해(2월 28일 기준) 2천964실로 편성돼 고작 48개 실이 느는 데 그쳤다.
증가한 48개도 3월 신설 예정인 초등학교의 돌봄교실 등 자연증가분으로, 학부모 요청에 따라 늘어난 돌봄교실은 단 한 곳도 없다.
도교육청의 초등돌봄교실 증설금지 원칙은 무기계약직인 돌봄전담사들을 더 늘릴 수 없다는 판단에서 내려진 결정이었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학생 수가 2020년을 고점으로 계속 주는 데 채용과 동시에 무기직으로 전환되는 돌봄전담사들을 계속해서 뽑을 수가 없다"라며 "더군다나 지자체도 앞으로는 돌봄을 확충하겠다고 하니 더욱 늘릴 수가 없는 여건"이라고 설명했다.
도교육청은 그 대신에 '방과후학교 연계형 돌봄교실'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돌봄교실을 269개 늘렸다고 설명했다.
돌봄 전용 교실에서 돌봄전담사들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존 돌봄교실과 달리 연계형 돌봄교실은 학교 내 도서관이나 유휴교실, 특별실 등을 리모델링해 1∼6학년 학생들이 다 함께 자기 주도 활동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책을 보거나 쉬거나 교구 놀이 등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고, 교사나 퇴직 교원, 자원봉사자들을 고용해 학생들을 관리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돌봄교실 신청자가 몰리는 학교에선 일반교실도 부족한 마당에 연계형 돌봄교실을 위한 공간을 만들 여력이 없을뿐더러 관리에 대한 부담감을 내세우며 연계형 돌봄교실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6천만원가량을 지원해주는 연계형 돌봄교실 사업에 수원에선 단 3개 학교만이 신청하는 등 학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교육 수요자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교육 정책에 학부모들만 답답할 따름이다.
1학년 자녀를 둔 한 워킹맘은 "돌봄교실 떨어지면 아이를 학원 서너곳으로 '뺑뺑이' 돌려야 한다. 아니면 내가 일을 그만두는 수밖에 없다"라며 "저출산, 경력단절 대책은 쏟아지는 데 정작 현실은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young86@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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