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의인열전] ⑥ 화마에 쓰러진 대학생 구한 '봉천동 3인방'
오피스텔 화재에 소방대원보다 먼저 뛰어든 김해원·김영진·박재홍씨
"한명 못 구한 줄 알고 되레 죄책감…당연히 해야 할 일 했을 뿐"
(서울=연합뉴스) 이효석 기자 = "불 나는 건물 뛰어들기 무섭지 않았냐고요? 그런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오히려 두 명인데 한 명 못 구한 거 아닌가 싶어서 욕이 나오더라고요. 천만 다행히도 한 명만 있었던 게 맞았죠."
올해 5월 19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 오피스텔 화재 현장에서 연기를 마시고 쓰러진 주민을 구한 의인 김해원(49) 씨와 김영진(44) 씨는 27일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들은 그때를 되돌아보면 지금도 아찔하다면서, 사람을 구했다는 뿌듯함보다는 외려 못 구한 사람이 있지는 않았는지 불안함이 컸다며 고개를 저었다.
해원 씨는 화재 당일 오후 2시 55분께 불이 난 오피스텔 맞은편 자동차 공업사에서 일을 보고 있었다. 그는 18년째 공업사를 운영하고 있다.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하는 영진 씨는 인근 건물에 새로 들어오는 카페의 인테리어 공사를 맡았는데, 불이 나던 날에는 기존 시설물을 철거하고 있었다.
화재를 먼저 발견한 건 해원 씨였다. 그는 오피스텔 5층에서 거리로 새어 나오는 연기를 발견하고는, 곧바로 119신고를 한 뒤 "불났다!"고 외치며 오피스텔로 뛰어 들어갔다.
이를 본 영진 씨도 바로 옆에 있는 낙성대지구대로 뛰어가 경찰에게 불이 났다고 알린 뒤, 오피스텔 속으로 달음박질했다.
영진 씨가 공사하고 있던 카페의 점주 친구로서 공사를 돕고 있었던 박재홍(30) 씨도 함께 오피스텔로 서둘러 향했다. 재홍 씨는 영화 '조선명탐정2' 등에 출연한 적 있는 배우다.
해원 씨는 연기가 흘러나오는 집이 어느 집이었는지 미리 확인한 뒤 올라갔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불이 난 집의 문을 두들겼다.
그러자 문 안쪽에서 '컥, 컥' 거리며 연기를 마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소리가 들렸다.
자칫하면 사람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라는 걸 직감했다. 해원 씨는 집 안에 두 명이 있다고 생각해 "두 명이 있는 것 같다"고 소리치면서 도움을 청했다.
영진 씨와 재홍 씨는 마침 철거공사 중이었던 카페에서 속칭 '빠루'라 부르는 노루발못뽑이 등 연장을 들고 와 문의 잠금장치를 뜯어냈다.
그러자 현관문 앞에 20대 청년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재홍 씨는 쓰러진 남성을 어깨에 들쳐 메고 1층으로 뛰어 내려갔고, 마침 도착한 소방 구조대에 남성을 넘겼다.
영진 씨는 해원 씨가 '두 명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 게 마음에 걸려, 소화기를 뿌려 연기를 헤치면서 집 안쪽을 더 살펴봤다.
영진 씨는 "침대까지 봤는데 사람이 없었다. 연기 때문에 더 들어갈 수가 없어서 결국 내려왔는데, 혹시 다른 사람이 있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죄책감이 들어 욕이 절로 나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다행히 다른 피해자는 없었고, 불은 30분여 만에 추가 피해 없이 진화됐다.
의인 세 명이 소방대원들보다 먼저 오피스텔에 뛰어들어 구조해 낸 A(26)씨는 서울대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다.
그는 양팔과 얼굴 등에 2도 화상을 입었고 호흡기도 다쳐 말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상태지만, 의식은 회복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원 씨는 "(A씨) 어머님과 이후에 통화했는데, 감사하다고 여러 번 말씀하시더라"면서 "학생을 생각하면 마음이 정말 안타깝지만, 그래도 살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그는 선행한 것은 마음이 뿌듯하지만, 가족에게는 '죽으면 어쩔 뻔했느냐'며 크게 혼났다고 한다. 영진 씨는 혼날까 봐 가족에게 말도 안 했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영진 씨는 "세상에 제일 큰 복이 사람 살리면 오는 복이라더니, 그 일이 있고 나서 하반기에 일이 아주 많아졌다"면서 "카카오톡에 표창장 받은 사진을 올려놨더니 거래하는 고객들이 더 신뢰하는 것 같다"며 흡족해했다.
해원 씨는 "제일 큰 복은, 좋은 동생들을 알게 된 것"이라며 영진 씨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이들은 26일 오후 박준희 관악구청장에게 표창장을 받으러 만나서도 서로 "형님", "동생" 하며 안부를 묻는 모습이었다. 영진 씨나 재홍 씨가 일이 있어 봉천동을 들를 때마다 셋 중에 '큰 형님'인 해원 씨의 자동차 공업사를 찾아 인사한다고 한다.
요새 개인주의가 점점 강해지고 서로의 어려움을 모른 체하는 경향이 있지 않냐고 묻자, 영진 씨는 손사래를 치면서 "안전과 생명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는 생각은 세대 차이 없이 모두 하지 않느냐. 우리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겸손해했다.
hy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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