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국제이슈] ⑥ IS 퇴장에도 여전히 먼 평화…둘로 쪼개진 중동
美 등에 업은 사우디, 대이란 적대 정책 강화
'핵 합의 탈퇴' 美 일방주의에 이란 핵위기 점증
카슈끄지 살해사건 돌출변수…역학관계 '출렁'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중동의 2018년은 적어도 폭력 사태가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출발했다.
이라크 정부는 올해가 시작되기 한 달 전인 2017년 12월 이슬람국가(IS) 소탕 작전에서 승리했다고 선언했다.
2014년부터 3년간 중동을 휩쓸었던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가 주 무대로 삼았던 이라크에서 퇴장한다는 승전보가 전 세계에 퍼졌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테러조직 하나가 쇠퇴했다고 해서 중동에 평화와 안정이 깃들지 않았다.
중동을 3년간 관통했던 '대(對)테러리즘'이라는 공통의 당위가 희미해지자 잠재했던 중동의 만성적인 갈등과 반목이 다시 선명하게 골격을 드러냈다.
중동의 패권을 놓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대결이 격화하면서 중동 정세가 살얼음판을 걸었다. IS라는 공적이 사라지자 이들은 서로를 테러리즘 지원세력이라고 지목하면서 중동 다른 나라에 어느 편에 설 것인지 선택을 요구했다.
이들의 대립을 흔히 이슬람 수니파(사우디)와 시아파(이란)의 종파적 차이로 이해하지만, 미국의 존재를 고려해 해석해야 한다.
2017년 1월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란에 대해 '본능적'이라고 할 만큼 적의를 보이며 전임 버락 오바마 정부와 달리 일방적으로 이란의 적성국 사우디와 이스라엘 편에 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까지 이행을 보증한 다자간 약속인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대선 운동 기간 공언한 그대로 올해 5월 실제로 탈퇴했다.
미국은 8, 11월 대이란 제재를 복원해 핵합의 타결 이전으로 되돌렸다.
미국의 거세지는 적대적 압박에 이란은 굴복하지 않고 핵프로그램을 재가동하고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경고했다. 2015년 역사적인 핵합의 타결로 잠잠해진 이란 핵위기가 다시 점증했다.
또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의 이른바 '시아파 벨트'를 더 강화하는 강경한 정책을 펴는 구실이 됐다.
미국의 일방주의로 핵합의에 서명한 유럽연합(EU)이 이를 준수한 이란을 지지하면서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보기 드문 상황도 벌어졌다.
그런데도 트럼프 정부의 편 가르기식 중동 정책은 거침없이 이 지역의 뇌관을 자극했다.
미국 정부는 5월 이스라엘 텔아비브 주재 자국 대사관을 종교적으로 민감한 예루살렘으로 이전함으로써 이슬람권의 공분을 샀다. 이로써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더 꼬였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3월부터 벌어진 반미, 반이스라엘 시위를 이스라엘군이 유혈진압 해 230여명이 숨졌다.
IS 사태는 테러리즘 소탕을 명분삼아 중동에 개입하게 된 '플레이어'가 이전보다 많아져 이해관계가 엮이면서 갈등 해결이 더 복잡해졌다는 후유증을 낳았다.
중동에 별다른 영향력이 없었던 러시아와 터키가 중동 내 여러 현안에 깊숙이 개입했다.
중동의 난맥상은 8년째 계속되는 시리아 내전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시리아 내전이 해결되지 않는 것은 적의 적이 동지가 아닌 탓이다.
이 전쟁은 이란과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지원하는 시리아 정부와, 미국과 중동의 친미 진영이 돕는 반군의 대결로 크게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와 터키가 시리아 내전에 본격적으로 등장하자 해(解)를 구하기 어려운 고차 방정식이 됐다.
러시아와 이란은 시리아 정부 편이지만 터키는 미국 진영에 속한다. 동시에 시리아 쿠르드 반군을 놓고 이란과 터키는 이해관계가 일치하고, 시리아 내 이란군과 정부군을 공격하는 이스라엘은 러시아와 긴밀한 연락을 주고받는다.
터키는 친미 국가 사우디와 전통적으로 껄끄러운 데다 미국 편에 묶이면서도 미국에 '고분고분'하지는 않다.
시리아에 대한 러시아와 터키의 입김은 트럼프 정부가 시리아에서 발을 빼려 하면서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현재 시리아 평화협상은 러시아, 이란, 터키 3개국이 주도한다. 러시아와 이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시리아 정부군은 올해 북부 일부를 제외하고 반군 지역을 대부분 탈환했다.
중동의 최대 현안인 시리아와 예멘의 장기 내전이 2011년 중동을 휩쓴 반독재 시민운동인 '아랍의 봄'의 예기치 못한 결과라는 점에서 선의가 반드시 역사의 진전으로 즉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역설이 중동에서 증명된 셈이다.
중동의 정세가 미국을 등에 업은 사우디의 강경한 외교 정책과 이에 맞서는 이란 주도의 시아파 벨트의 대결로 굳어지는 듯했으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초대형 변수가 10월에 터졌다.
10월2일 주이스탄불 사우디 총영사관을 방문한 사우디의 비판적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사우디 정부에서 보낸 요원들에게 잔인하게 토막 살해됐다.
사우디는 이를 완강히 부인하다 실체적 진실에 가장 가깝게 접근한 터키 정부의 언론 플레이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3주 만에 살해 사실을 자인했다.
사우디 정부는 실세 왕자이자 차기 국왕이 유력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연관성을 부인했으나, 모든 정황은 그를 배후 지시자로 지목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함마드 왕세자를 비호하려 했으나, 미국의 일방주의에 반감이 누적됐던 국제 사회는 친미 사우디 왕정에 포화를 퍼부었다.
여성 운전 허용으로 개혁적 계몽군주로 칭송받던 무함마드 왕세자는 순식간에 비판 언론인을 암살하는 잔혹한 두 얼굴의 독재자로 추락했다.
무함마드 왕세자의 거칠 것 없던 사우디의 강경한 대외 정책이 카슈끄지 사건으로 위기에 처하자 사우디는 이를 타개하려고 자신이 직접 군사 개입한 예멘 내전을 해결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다.
사우디와 이란의 대리전 성격인 탓에 예멘 내전은 시리아보다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론이 우세했지만 11월 하순 사우디가 예멘 반군의 요구를 전격적으로 수용하면서 평화회담이 급물살을 탔다.
12월 6일부터 한 주간 열린 평화회담에서 사우디가 지원하는 예멘 정부와 반군은 격전지 호데이다에서 휴전하고 철군하자고 합의했다.
카슈끄지 사건으로 사우디의 든든한 원군이던 미국도 냉담해지자 그 틈을 타 러시아가 사우디에 급속히 접근했다. 대미 의존을 낮춰 힘의 균형을 맞춰야 했던 사우디도 이를 환영했다.
사우디와 러시아는 미국의 압박을 무릅쓰고 12월 초 원유 감산을 합의했다.
중동이 피아 구분이 무의미한 열강의 외교전장이 된 것이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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