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훈의 골프산책] 명품 대회의 조건…갤러리 숨소리
(서울=연합뉴스) 권훈 기자= 지난 28일 끝난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 현장을 찾은 갤러리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그린에서 퍼트하는 선수들의 숨소리까지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린 프린지 앞까지 다가서서 경기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린뿐 아니라 페어웨이에서도 선수들의 샷을 눈앞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샷을 하기 전 캐디와 상의하는 선수의 목소리도 또렷하게 들렸다.
부산에서 왔다는 김해범(48)씨는 "프로 골프 대회를 제법 많이 보러 다녔지만 이렇게 선수들 경기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긴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런 생생한 관전이 가능했던 건 갤러리 통제선이 다른 대회와 달랐던 덕분이다.
대개 국내 프로 골프 대회 갤러리 통제선은 카트 도로 바로 옆이다.
페어웨이와 러프를 가르는 선에서 10∼15m 떨어진 곳이다. 페어웨이에서 샷 하는 선수 얼굴이 가물가물하다. 선수 표정을 읽고 말소리를 듣는 건 꿈도 꾸지 못한다.
김 씨는 "너무 멀어서 선수 모습이 손가락 한 마디 크기로 보일 때도 있다"면서 "그럴 땐 'TV로 볼 걸 뭣 하러 여기까지 왔나'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린 주변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대회에서는 그린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지점에 갤러리 통제선을 설치한다.
최경주 인비테이셔널 때 그린 주변 갤러리 통제선은 프린지까지 근접했다.
그린과 페어웨이에 바짝 붙은 갤러리 통제선은 갤러리에게 중계방송으로는 느끼지 못하는 현장감을 선사한다.
대회 운영을 맡은 YG 스포츠 강영환 대표는 "많은 대회를 운영해봤다.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처럼 갤러리 통제선을 페어웨이와 그린에 바짝 붙이는 대회는 거의 없다고 보면 맞다"고 밝혔다.
강 대표는 "다른 대회와 비교하면 갤러리 통제선이 10m 이상 코스에 근접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은 어떻게 갤러리 통제선을 이렇게 설치할 수 있었을까.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을 명품 대회로 만들겠다는 대회 호스트 최경주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코리안투어 지민기 경기위원은 "최경주 프로가 갤러리 통제선을 직접 정해줬다. 대개 골프장측은 잔디 보호를 위해 통제선을 가능하면 페어웨이와 그린에 멀게 설치하도록 하지만 최경주 프로의 말에 군말 없이 따르더라"고 말했다.
최경주는 명품 대회의 조건으로 '난도 높은 코스 세팅'과 함께 현장감 있는 관전 환경을 꼽았다.
먼발치에서만 선수들 플레이를 볼 수 있다면 티켓을 사서 먼 거리를 달려온 보람이 없지 않으냐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배려가 오로지 갤러리의 편익에만 초점을 맞춘 건 아니다.
최경주는 "선수들도 갤러리의 숨소리와 눈빛을 느끼며 경기하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땅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더CJ컵에 출전했던 코리안투어 간판선수들은 '평소 자주 접하지 못한 코스 세팅'을 부진의 이유로 꼽았다.
낯선 코스 세팅에는 선수 바로 옆에 바짝 붙어서 관전하는 갤러리의 존재도 포함된다.
수백 명이 바로 옆에서 샷을 지켜보는 환경은 코리안투어 선수들에게는 낯설었다.
지난해 최경주 인비테이셔널 우승자 황인춘(44)은 "일본프로골프투어에서 뛸 때는 샷을 하다보면 갤러리의 숨소리와 눈빛이 바로 옆에서 느껴졌다"고 말했다.
지민기 경기위원은 "빠르고 단단한 그린 못지않게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갤러리도 선수들에게는 상당한 압박감을 준다. 우리 선수들은 그런 경험이 없거나 적다"고 설명했다.
최경주는 "우리 선수들이 볼은 잘 친다. 그러나 난도 높은 코스에서 갤러리가 바짝 붙어서 관전하는 상황에서 경기해본 경험이 적다. 이런 경험을 쌓아야 세계 무대에 나갔을 때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민기 경기위원은 "코스에 OB 말뚝을 제거하고, 그린 스피드를 올리고, 러프를 기르고, 핀 위치를 더 어렵게 만드는 작업과 함께 갤러리 통제선을 선수들에 가깝게 옮기는 것도 코리안투어가 지향할 과제"라고 말했다.
내년부터는 코리안투어를 보는 재미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kh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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