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구경하다가 '파출소 방화범' 몰려 징역…38년 만에 무죄
법원, 부마 민주항쟁 관련자 재심서 무죄 선고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부마 민주항쟁 당시 시위를 구경하다가 연행돼 '파출소에 불을 질렀다'는 누명을 쓰고 징역을 산 시민이 재심을 통해 38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1부(성지용 부장판사)는 1980년 징역 1년을 확정받은 황모씨의 재심에서 소요 및 공용건조물 방화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1979년 부마항쟁 당시 금형공으로 일하던 황씨는 10월 17일 밤 술을 마시고 부산 남포동 파출소 건너편에서 시위 장면을 구경하다가 진압 경찰관들에게 체포됐다.
부산 중부경찰서로 연행된 황씨에게 경찰은 '누가 파출소에 불을 지르라 했느냐'며 다짜고짜 폭행했다.
구타를 당하던 황씨 앞으로 생면부지의 다른 연행자들이 끌려왔고, 이들은 경찰의 요구에 황씨를 방화범으로 지목했다.
이후로도 혐의를 부인하던 황씨는 이튿날 물고문 등을 당한 끝에 경찰의 요구대로 자신이 불을 질렀다는 내용의 진술서를 썼다.
이런 진술을 근거로 재판에 넘겨진 황씨는 이듬해 7월 징역 1년을 확정받았다.
2015년 '부마 민주항쟁 진상규명 및 관련자 명예회복 심의위원회'로부터 부마항쟁 관련자로 인정받은 황씨는 "수사기관의 가혹 행위로 허위 자백을 했다"며 지난해 재심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당시 황씨가 법정에서 혐의를 자백한 데에도 고문과 가혹 행위의 여파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그가 시위에 참여했거나 방화 행위에 가담한 혐의가 입증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어 설령 황씨가 시위에 참가했다고 해도 부마항쟁 당시 시위대의 과격 행위가 '한 지역에서 공공의 평화·평온·안전을 해할 정도'가 돼야 하는 형법상 소요죄를 적용할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유신체제 강화로 국민의 기본권 침해가 극심해지던 중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과 마산지역을 중심으로 부마 민주항쟁이 전개됐다"며 "부산지역 시민 사이에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던 만큼 시위가 시민들의 불안감을 초래하는 정도는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시위대 중 일부가 경찰관서 등에 돌을 던지거나 경찰 오토바이에 불을 질렀고, 이를 저지하는 경찰관들이 상해를 입기도 했으나 당시 피고인이 구체적으로 이런 행위를 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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