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카슈끄지 파문' 꼬리자르기?…'일탈행위'로 결론나나(종합)
후폭풍 거세지자 "미승인 불한당 살인자들" 시나리오 띄우기 관측
살해 배후 의심받는 '빈살만 왕세자 거리두기'가 출구전략 핵심?
(이스탄불·서울=연합뉴스) 김남권 기자 하채림 특파원 =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터키 내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실종돼 피살 의혹이 제기된 사건이 결국 사우디 정보기관 등 일부 집단의 '비승인 일탈행위'로 결론 나는 분위기다.
실종 뒤 2주 가까이 사우디 왕실은 이번 사건과 연관성을 극구 부인해왔지만, 최근 하루이틀 사이에 갑작스럽게 '피살 사건은 있었지만 사우디 왕실은 몰랐던 일탈 행위였다'는 요지로 급속히 정리되는 기류다.
국제사회 압박과 비난에다 막대한 경제적 손실 위험 등 엄청난 후폭풍에 놀란 사우디 왕실과, 경제·안보적 측면에서 사우디를 끝까지 안고 가려는 '최우선 우방'인 미국이 손을 잡고 출구전략을 마련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5일(미국동부 현지시간) 공개한 살만 빈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과의 전화통화에서도 이같은 기류가 감지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살만 국왕과 20여분간 통화한 뒤 기자들과 만나 "살만 국왕의 얘기는 어쩌면 (범인이) 불한당 살인자들(rogue killers)일 수도 있는 것처럼 들렸다"면서 "나에게는 그와 왕세자가 모르는 것처럼 들렸다"고 말했다.
이전까지 카슈끄지 실종 사건에 대한 사우디 측의 공식적인 해명은 그가 주(駐)이스탄불 총영사관을 떠났으며, 피살설과 총영사관은 무관하다는 것이었다.
이와 달리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본인이 짐작하는 형식이기는 해도 사우디 정부 내 일부 인사가 카슈끄지 실종에 연루됐을 가능성을 국왕이 인정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전한 살만 국왕과의 전화통화의 핵심은 "그와 왕세자가 모르는 것처럼 들렸다"라는 대목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카슈끄지 피살을 부인하는 것이 어려워진 상황이라면, 사태 파장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사우디 왕실은 이를 몰랐다"는 쪽으로 몰고가려는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CNN 방송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언론은 소식통을 인용해 사우디 정부가 카슈끄지 사망을 인정하되 책임을 일부 인사에 전가하려한다고 보도했다.
사우디 정부는 카슈끄지가 심문 과정에 문제가 생겨 숨졌으며, 이 작전은 왕실의 승인 없이 진행됐다는 보고서를 준비하고 있다고 익명의 소식통이 CNN에 설명했다.
카슈끄지 죽음이 미승인 작전의 결과라는 CNN 보도는 "(범인은) 불한당 살인자들(rogue killers)일 수도 있는 것처럼 들렸고, 그와 왕세자가 (살해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들렸다"고 한 표현과도 통한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사우디 정부가 자국 정보원이 심문 도중 카슈끄지를 실수로 살해했다고 인정할지를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사우디 법원은 정보기관의 한 관리가 카슈끄지를 살해했으며, 이 관리가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의 친구인 것은 우연이라는 식의 '시나리오'를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이를 두고 어느정도 예상된 시나리오라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터키·중동 전문가들이 유사한 '출구전략'을 점쳤기 때문이다.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의 터키 책임자 소네르 차압타이는 14일 워싱턴포스트(WP)에 "양국이 원만한 출구전략을 짜고 있을 것이며, 그 전략은 사우디 정부 내 불한당 집단(rogue elements)에 책임을 돌리는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설령 '사우디 왕실은 몰랐던 불한당 살인자들의 일탈행위'라는 시나리오가 조사 결과로 나온다고 해도 사우디 왕실 연루 의혹은 쉽사리 사라지긴 힘들 전망이다.
당장 카슈끄지 가족은 15일 WP에 발표한 성명에서 "우리는 슬프고 걱정스럽게 우리 아버지의 운명에 대한 상반되는 뉴스를 지켜보고 있다"면서 "카슈끄지의 사망 정황을 조사할 독립적이고 공정한 국제 위원회 구성을 요구한다"라고 촉구했다.
워싱턴의 많은 전현직 관리들도 사우디 총영사관 내에서 벌어진 이번 사건이 사우디 왕실 고위인사들의 승인 없이 이뤄졌을 수 있다는 주장은 믿기 어렵다는 기류라고 워싱턴포스트지는 전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오랜 외교 경험이 있는 전직 고외 외교관은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의 승인 없이는 이런 일은 절대,절대,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크리스 머피 상원의원(민주, 코네티컷)은 "정말로 놀랍게도 사우디 왕실은 미국 대통령으로 하여금 '불한당 살인자들 이론'을 띄우는 홍보대행 역할을 하도록 할 수 있었다"고 꼬집었다.
앞서 이달 2일 카슈끄지는 이혼 확인서류를 수령하러 주이스탄불 사우디 총영사관에 들어간 후 연락이 끊겼다.
이후 카슈끄지가 사우디 왕실이 보낸 '암살조'에 의해 살해됐다는 의혹이 터키 언론과 외신을 통해 제기되고, 실종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사우디인 일행의 신상정보와 동선이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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