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화이트 리스트 사건'에서도 징역형 선고받은 김기춘·조윤선
(서울=연합뉴스) 박근혜 정부 시절 경제단체를 압박해 친정부 성향 보수단체를 지원하도록 한 이른바 '화이트 리스트 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같은 혐의로 함께 재판을 받은 조윤선 전 대통령 정무수석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는 5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및 강요 혐의로 기소된 이들에게 징역형의 유죄 판결을 내리면서 1심을 마무리했다. 김 전 실장은 앞서 좌파 문화예술계 인사를 지원대상에서 배제한 '블랙리스트 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기소 돼 2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상고해 대법원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한 상황에서 구속기한이 만료돼 지난 8월 석방됐다. 그러나 이번 실형 선고로 법정 구속돼 두 달여 만에 다시 구치소에 수감됐다. 같은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상고심을 기다리던 중 역시 구속 기간 만료로 지난달 풀려난 조 전 수석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김 전 비서실장과 조 전 정무수석은 이로써 블랙리스트와 화이트 리스트 두 사건 모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이들이 전국경제인연합회에 특정 보수단체에 자금을 지원하도록 한 행위는 강요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대통령 비서실 고위 인사들의 자금지원 요청은 단순한 요청을 넘어서 전경련에 상당한 부담을 줬을 것이 명백하다고 본 것이다. 다만, 재판부는 이런 행위가 두 사람의 일반적 직무 권한에 속하지 않는 데다 업무집행의 형식과 외형을 갖췄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김 전 실장은 앞서 2014~2015년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압박해 어버이연합 등 21개 특정 보수단체에 23억 원을 지원하게 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4년을 구형받았다. 조 전 수석 역시 2014~2016년 전경련에 31개 보수단체에 35억 원을 지원하도록 강요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6년·벌금 1억 원·추징금 4천500만 원을 구형받았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집권층이 자신의 입맛에 따라 사회단체나 문화예술계 인사를 차별적으로 지원하거나 배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특히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무수석이 헌법과 법률을 어겨가며 보수 정권의 정책 관철을 위해 우파 단체를 지원하고 좌파 인사를 배척하는 작업을 주도한 것은 단호한 법적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 재판부가 "헌법은 기업과 개인의 경제활동 자유, 재산 보호를 중요시한다"며 "이런 헌법 가치를 중시해야 할 대통령 비서실 구성원이 전경련에 자금지원을 강요한 것은 사적 자치 원칙을 침해한다"고 판시한 것은 두 사람뿐 아니라 정치적 목적으로 단체나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모든 집권 계층에게 울리는 경종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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