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발로 싸우는 펜싱 김선미 "장애인들에게 희망 주고 싶어"
인니 장애인AG 펜싱대표팀의 유일한 여성검객…왼발 절단 사고 극복
"현실 문제 이겨내는 모습 보여주고 싶어"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휠체어 펜싱 국가대표 김선미(29·온에이블)가 왼발을 잃은 건 중학교 3학년 때인 2004년의 일이다.
집에 데려다주겠다는 친구의 권유로 오토바이를 탄 게 화근이 됐다.
오토바이 사고로 김선미는 왼발 무릎 위까지 절단하는 대수술을 받았다.
그는 "한순간이었다. 어린 나이에 장애인이 됐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몸과 마음이 매우 아팠던 시기"라고 곱씹었다.
김선미가 스포츠를 접한 건 자의가 아니었다. 괴로움에 흐느끼다 장애인 펜싱 선수인 김기홍의 권유로 칼을 잡았다.
대다수 장애인 선수들은 사고 후 스포츠로 마음을 치유하며 심신을 바로 잡았다고 하지만, 김선미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장애를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운동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사춘기 때라 더 그랬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선미가 마음을 잡고 휠체어 펜싱 선수의 길에 본격적으로 들어서기까지는 약 1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는 "곁에서 응원해주는 가족들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운동은 힘들었다. 장애인 스포츠의 저변이 워낙 좁았다. 특히 여성 장애인 선수들이 별로 없어 효과적인 훈련을 하기 힘들었다.
그는 힘들 때마다 가족을 떠올리며 꿋꿋이 버텼다.
그리고 2010년 광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 2012년 런던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 2014년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에 출전하며 무럭무럭 성장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았다. 그는 인천 대회 직후 운동을 그만뒀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김선미는 "대회 후 실업팀이 해체돼 수입이 없었다. 막막하더라. 미래에 관한 걱정이 많이 됐다"라고 말했다.
장애인 스포츠에선 월급을 주는 안정된 실업팀이 없다면 선수가 운동을 이어가기 힘들다. 김선미도 그랬다.
그는 무작정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일을 찾다 웹디자인을 배우기도 했다.
그는 "앉아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니 웹디자인밖에 없더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포토샵 등을 배워 생계를 이어갔다"라고 말했다.
2년 동안 경기장을 떠나있던 김선미가 다시 펜싱 칼을 잡을 수 있었던 건 수입 문제가 해결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 대원지오텍은 장애인 펜싱 사상 최초의 민간기업 실업팀인 온에블을 창단했고, 김선미는 이 팀에 들어가 다시 꿈을 꾸게 됐다.
김선미는 "현재 장애인 스포츠는 선수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주변의 투자와 관심이 없다면 운동을 이어가기 힘든 구조"라며 "이번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장애인 스포츠를 홍보해야겠다고 다짐한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2018 인도네시아 장애인아시안게임을 통해 4년 만에 국제대회 복귀전을 치른다.
목표는 당연히 금메달이다. 한국 여자 휠체어 펜싱 역사상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획득해 사회적인 관심을 끌어내고, 미래를 걱정하는 수많은 여성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겠다는 게 김선미의 생각이다.
그는 "아직 많은 관심을 받지는 못하고 있지만,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 여성 장애인도 우뚝 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라며 "온몸이 부서진다는 각오로 매 경기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미가 출전하는 인도네시아 아시안게임은 6일 개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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