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폭염 르포] 고갯길 넘자 금세 39도…"강원도 열대지방 다 됐네"
번화가·축제장 발길 뚝…실내서 밖으로 한 발짝만 나가도 숨 막혀
(홍천·영월=연합뉴스) 배연호 양지웅 박영서 기자 = 강원도 영월의 수은주가 39.2도를 가리킨 2일 낮 12시 23분.
태백 시내에서 34도를 나타낸 차량 온도계는 영월로 넘어가는 고갯길인 상동재를 넘는 순간 37도로 솟구쳤다.
영월군 상동읍은 평소에도 인적이 드문 폐광촌이지만 이날 읍내 거리에서는 단 한 명도 볼 수 없었다.
상동읍을 지나 김삿갓면에 이르자 온도계는 38도까지 올라갔다.
주민 이종택(83)씨는 "덥다고 밭에 물을 자주 주지 않으면 금방 타 죽는다"며 호스를 잡았다.
도로변에서 옥수수를 쪄서 파는 주민은 선풍기 2대를 돌리는 것도 모자라 부채질까지 했지만 "도무지 시원한 줄 모르겠다"며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수건으로 연신 닦았다.
수은주가 39도를 가리킨 영월읍 거리는 발길이 뚝 끊긴 상태였다.
시원함을 선사하는 영월의 짙은 녹음도 전혀 위안이 되지 못했다.
동강뗏목축제장도 물놀이장 외에는 한산했다.
그늘막 아래서 물놀이하는 손자를 지켜보던 박정자(78·여)씨는 "강원도가 언제부턴가 열대지방이 됐다"고 했다.
그는 "그나마 여기 동강 둔치는 강바람이 불어 시원하다"며 "시내는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고 덧붙였다.
이날 영월은 아침부터 펄펄 끓었다.
직장인 강승희(51)씨는 "오전 7시 30분 차량 온도계는 이미 30도를 훌쩍 넘었다"며 "사무실 밖으로 한 발짝만 나가도 숨 턱 막혀온다"고 혀를 내둘렀다.
전날 41도까지 오르며 우리나라 폭염 역사를 새로 쓴 홍천은 이날 38.7도로 전날보다 2.3도 낮았으나 더위에 힘든 건 매한가지였다.
오전부터 30도가 넘는 더위가 고개를 들자 팔봉산 유원지를 찾은 피서객들은 쉽게 강 속으로 향하지 못했다.
내리쬐는 뙤약볕을 피할 곳이 마땅치 않아 강물보다는 근처 나무 그늘이나 텐트에서 쉬는 피서객들이 많았고, 몇몇은 에어컨을 틀어놓은 차 안에서 몸을 뉘었다.
일산에서 가족과 함께 피서를 온 이형재(38)씨는 "어제 오후는 너무 더위서 못 견딜 정도였는데 밤에는 그나마 시원했다"며 "이번 휴가를 통해 강원도 더위를 제대로 느꼈다"고 말했다.
홍천 번화가도 더위에 활기를 잃었다. 시외버스터미널과 중앙시장 근처 인도는 보행자를 찾기 힘들었고, 에어컨을 시원하게 틀어놓은 카페들도 텅텅 비었다.
시장 안은 형편이 더욱 나빴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도 쐬지 못하는 상인들은 훗훗한 바람이 나오는 선풍기 앞에서 부채질하며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그러나 후텁지근한 시장을 찾는 발걸음은 찾기 힘들었다.
총떡, 올챙이 국수, 잣 콩국수 등 향토음식을 파는 상인들은 가마솥 불을 끄고 더위를 견뎠으나 좀처럼 장사할 맛이 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시장 안에서 30년째 식당을 운영하는 김춘옥(75)씨는 "어제는 더워도 너무 더워서 손님 발길이 뚝 끊어졌다"며 "찜통 같은 시장 안에서 누가 밥을 먹고 싶겠냐"며 볼멘소리로 답했다.
생선가게는 혹시라도 더위에 상할까 봐 생선을 좌판에 깔지 않고 냉장고 속에 보관하기도 했다.
시장 인근에서 주차관리를 하는 최모(69)씨는 "아침에 얼린 생수를 들고나와도 금방 녹아버려 더위를 참기 힘들다"며 "더위 때문에 큰일"이라고 걱정했다.
이날 강원지역 낮 최고기온은 전날보다 낮았으나 횡성 40도, 원주 부론 39.7도, 북춘천 39.3도, 영월 39.2도, 홍천 38.7도 등 38도를 훌쩍 넘는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대프리카' 별칭이 붙은 대구나 경북지역도 아닌, 더위보다는 추위로 더 알려진 강원지역 수은주가 40도 위를 가리키면서 일부 누리꾼들은 홍천을 '홍프리카'라고 부르고 있다.
기상청은 강원도에 이 같은 더위가 나타난 이유는 동풍과 푄현상의 영향으로 백두대간을 넘은 고온 건조한 공기가 분지인 홍천에 갇히는 열섬 효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폭염으로 현재까지 도내에서는 닭 7만1천 마리와 돼지 812마리가 폐사했고, 농작물 피해 면적은 축구장 면적의 135배가 넘는 97.1㏊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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