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감독 "국가·문화 달라도 전해질 것은 전해져"
올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어느 가족' 홍보차 방한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저는 작게 낳아서 길게 오랫동안 잘 키워가자는 마음으로 계속 작품활동을 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어온 것이 이런 형태(황금종려상)로 보답을 받게 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5월 19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1회 칸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발표됐다. 수상작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이었다.
당시 우리 영화계는 기대를 모은 '버닝'의 수상 불발에 실망했지만, '우나기' 이후 21년 만에 황금종려상을 품에 안은 일본 영화계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덕분에 '어느 가족'은 일본에서 3주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3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불러들였다. 할리우드 영화와 애니메이션이 극장가를 장악하다시피 한 일본에서 국내 영화가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기는 매우 드문 일이다.
국내서도 지난 26일 개봉해 29일까지 사흘간 3만8천582명을 불러들이며 할리우드와 국내 영화 대작 사이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어느 가족'의 국내 개봉을 기념해 30일 서울 시네큐브 광화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고레에다 감독은 "한국에서도 좋은 출발을 끊었다는 말을 들었다"며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특히, 이날 기자회견 테이블 중앙에는 고레에다 감독이 직접 들고온 '황금종려상'이 놓여 시선을 모았다.
고레에다 감독은 '어느 가족'뿐 아니라 전작인 '태풍이 지나가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원더풀 라이프', '걸어도 걸어도' 등으로 국내에도 두터운 팬층을 형성한 터다.
기자회견에서 '당신의 작품이 한국적 정서와도 부합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이 나오자, 그는 "최근에는 어떤 부분이 국경이나 문화를 넘어서 감동을 주는지에 대해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의식한다고 해서 전해지지 않을 수도 있고, 의식하지 않아도 전해질 것은 전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에게 절실한 주제나 모티프를 파헤치다 보면 전해질 것은 전해진다는 확신을 하게 됐습니다. 제 작품을 사랑해주는 프랑스, 캐나다, 스페인, 한국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 작품에 위화감을 느끼지 않고 수용해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어요. 그래서 '아마 이 부분은 전해지겠지'라는 신뢰를 하게 됐어요"
'어느 가족'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진짜 가족보다 더 단단한 결속력을 보이는 가짜 가족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의 원제인 '만비키 가족'에서 '만비키'는 좀도둑을 뜻한다. 이들 가족은 제목처럼 좀도둑질로 생계를 이어간다.
고레에다 감독은 부모가 사망했지만 사망신고를 하지 않고 부모 앞으로 나오던 연금을 받아 챙긴 사기 사건을 접하고 이 영화를 구상했다고 한다.
이 사건을 접하고 혈연이 아닌 형태로 공동체를 구성해서 가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능성을 생각해 보고 싶었다고.
"가족은 어때야 한다든가, 좋은 가족이란 어떤 것이라는 정의를 내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가족은 여러 형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억압적으로 가족의 형태를 규정하는 것은 좋은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여러 형태의 가족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고레에다 감독은 21년 만에 일본 영화계에 황금종려상이라는 영광을 안겼지만 일본 우익들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는다.
그는 아베 정권의 안보관련법 반대 집회에 참가했으며 정부·여당의 압력을 우려하는 발언을 해 반(反) 아베 성향 인물로 꼽힌다.
작품 세계 역시 일본 사회의 어두운 면을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이 주를 이룬 탓에 우익들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인물로 찍혀있다.
그 때문인지 고레에다 감독이 황금종려상을 받았음에도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축하전화를 하지 않았고, 고레에다 감독도 일본 문부과학상이 만나서 축하하고 싶다는 제안한 것을 거절한 바 있다.
이에 일본 우익들은 작품 속 가족들이 좀도둑질로 생계를 이어간다는 점을 들어 '일본에 그런 가족은 없다'는 비난을 쏟아내는가 하면, 고레에다 감독이 정부 보조금을 받았음에도 '일본을 깎아내리는 영화를 만들었다'고 공격한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이와 관련한 질문이 나왔지만 고레에다 감독은 "영화의 본질과는 상관이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가능한 그런 이야기는 피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에 더 중요한 일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제 영화가 정쟁의 소재가 된다는 것이 마음 편한 일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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