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뼈가 갈비뼈?…몸에 대한 언어 변천사를 조명하다
국립한글박물관 '나는 몸이로소이다' 특별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서울 중구 정동에 있던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손탁호텔에서 사망 사건이 발생하자 조선인 관리와 서양 의사가 검시관으로 나섰다.
조선인 관리는 시신의 겉모습을 보고 사인(死因)을 찾아내려 했지만, 서양 의사는 신체 내부에서 발생했을 출혈이나 골절에 관심을 기울였다. 두 사람은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이 확연히 달랐다.
국립한글박물관이 19일 개막한 특별전 '나는 몸이로소이다'는 손탁호텔에서 일어난 가상 사건을 보여주는 영상으로 시작한다. 이 전시는 1906년 간행된 첫 한글 해부학 교과서인 제중원 '해부학'(解剖學)을 중심으로 개화기 서양의학이 들어온 과정과 몸에 대한 우리말 변천사를 조명한다.
박물관 소장품인 '해부학' 초간본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인 제중원이 일본 해부학자 이마다 쓰카누(金田束·1850∼1889)가 1888년 쓴 '실용해부학'(實用解剖學)을 번역한 책이다.
앞서 제중원 의학교 교수 올리버 애비슨(1860∼1956)이 헨리 그레이가 집필한 '해부학'을 두 차례 번역했으나 원고가 불타는 바람에 출판되지 못했고, 이어 제중원 학생 김필순(1880∼1922)이 일본 서적을 우리말로 옮기고 애비슨이 교열해 빛을 본 책이 3권으로 구성된 '해부학'이다.
박영국 국립한글박물관장은 간담회에서 "'해부학'은 2016년 공개 구매 절차를 통해 입수했다"며 "박물관에 있는 책은 유일한 '해부학' 초간본 전질로,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한다"고 말했다.
전시에는 '해부학' 서적뿐만 아니라 18개 기관이 보유한 유물 127건, 213점이 나왔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해부학 관련 자료도 볼 수 있다.
이애령 국립한글박물관 전시운영과장은 "전시 제목인 '몸이로소이다'는 개화기에 많이 쓴 경어체 표현"이라며 "전시 공간도 좌우 대칭과 규칙적 변화라는 개화기 서양건축 요소를 반영해 꾸몄다"고 설명했다.
제1부 '몸의 시대를 열다'는 조선시대 검시 보고서인 검안(檢案)과 중국·일본 서적을 통해 서양의학이 조선 전통의학과 어떻게 충돌하고 조화를 이뤘는지 살핀다.
전통적으로 동양에서는 몸과 마음을 하나로 인식했지만, 서양에서는 몸은 물질에 불과하고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고 여겼다. 허준이 지은 '동의보감'에는 "하늘에 365도가 있듯, 사람에게는 365개 골절이 있다"는 대목이 있는데, 실제 성인 뼈는 200개를 조금 넘는다.
이처럼 개화기 이전까지 조선 의학은 신체 구조물의 생김새와 크기, 위치를 연구하는 해부학을 수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검시를 할 때도 필요한 경우에 한해 신체 일부를 해부했다.
제2부 '몸을 정의하다'로 발걸음을 옮기면 1527년에 간행된 훈몽자회부터 동의보감, 역어유해, 왜어유해를 거쳐 '해부학'에 이르기까지 신체 기관을 지칭하는 단어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보여준다.
예컨대 갈비뼈는 가리뼈라고 했고, 정수리는 뎡박이, 관자놀이는 태양혈, 귓바퀴는 귓박회라고 적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개화기 한국인을 촬영한 유리건판 사진들도 한편에 전시됐다.
마지막 제3부 주인공은 '해부학'. 제중원이 편찬한 한글 '해부학'과 근대식 국립기관인 의학교가 1907년 펴낸 또 다른 '해부학' 서적, 20세기 초반에 나온 각종 의학서를 함께 선보인다. 의학교 '해부학'은 조사를 제외하면 모두 한자여서 읽기가 쉽지 않다.
이 과장은 "몸에 대한 생각은 결국 문화를 표상한다고 할 수 있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개화기에 조선이 어떻게 서양 사상을 받아들이고 문화를 바꿔 나갔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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