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포·강경 진압 거부' 이준규 목포경찰서장 5·18 유공자 인정
시민 충돌 피하려 무기 들고 섬으로 이동…유죄판결 대해서도 재심신청
(광주=연합뉴스) 장아름 기자 =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강경 진압 명령을 거부했다가 파면당한 고(故)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이 38년 만에 명예를 회복하게 됐다.
12일 국가보훈처와 이 서장 유족에 따르면 이 서장은 최근 5·18 민주 유공자로 결정됐다.
5·18 당시 목포경찰서장이었던 이 서장은 신군부가 '시위를 통제하지 못했다'며 책임을 물은 경찰 지휘부 13명 중 유일하게 파면당했다.
전남지방경찰청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5·18 민주화운동 과정 전남 경찰의 역할 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시위대를 강경 진압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던 안병하 전남경찰국장은 직위 해제됐고 다른 간부 11명도 의원 면직됐다.
이 서장은 사상자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경찰이 소지한 총기를 군부대에 반납하라는 안병하 국장의 명령에 따라 경찰 병력을 경찰서에서 철수시키고 총기의 방아쇠를 분리해 배에 실어 해경과 함께 가까운 섬인 고하도로 향했다.
경찰과 시민군의 정면충돌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목포로 돌아와 치안 유지 활동을 재개했다.
그러나 이 서장은 시위를 통제하지 못하고 자위권 행사에 소홀했다는 이유로 파면되고 보안사령부에 끌려가 90일 동안 구금·고문당했다.
이후 군사재판에 회부돼 선고유예를 받고 석방됐다.
재판 당시 목포시민들이 이 서장 석방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고문으로 건강이 악화한 이 서장은 5년간 투병하다가 1985년 암으로 사망했다.
유족들은 "수치스러운 경찰"이라는 오명을 벗고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수십 년 동안 노력해왔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도 명예 회복을 위한 절차를 밟았지만,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을 뿐 경찰로서 시민을 지키기 위해 정당한 일을 했다는 사실은 인정받지 못했다.
사위인 윤성식(65) 고려대 행정학과 명예교수가 기록을 모아 지난달 15일 5·18 유공자 신청을 했고 지난 3일 유공자로 인정받았다.
또, 서울서부지방법원에 군사재판 당시 유죄판결 받았던 사건에 대한 특별재심 신청도 접수한 상태다.
윤 명예교수는 "가족들이 너무 힘들어해 사실상 체념하고 있었는데 최근 안병하 국장의 사례를 계기로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장인의 명예를 되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늦게나마 아버님의 명예가 일부라도 회복돼 가족들도 기뻐하고 있다"며 "이것은 시작이다. 재심을 통해 아버님의 무고함을 밝히고 순직 경찰관으로 인정받아 고인을 편안하게 보내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areu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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