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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매진] "이 세상에 나쁜 책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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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매진] "이 세상에 나쁜 책은 없죠"
정은숙 '책의 해' 집행위원장 "함께 읽어요"

(서울=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취미를 물었을 때 '독서'라는 대답은 고리타분하고 식상하게 여겨진다. 날마다 수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중 대부분이 독자에게 외면받는다. 우리나라 국민의 독서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 10명 중 4명은 1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10명 중 6명은 자신의 독서량이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를 '책의 해'로 선포하고 출판계 등 민간 부문과 함께 조직위원회를 꾸려 범국민 책 읽기 운동에 나섰다. '책의 해'가 선포된 것은 출판산업이 호황을 누리던 1993년 이후 두 번째다. 지난 25년 동안 인터넷이 생겼고, 사람들은 종이 책 대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활자보다 영상이 훨씬 더 친숙하다. 요즘처럼 바쁜 세상에 한가하게 책 읽을 시간이 없다거나, 공짜로 볼 수 있는 쉬운 콘텐츠가 많은데 왜 책을 사느냐는 목소리도 크게 들린다.
그러나 책이 만들어지는 환경이나 유통되는 시장이 아무리 변화무쌍해도 책의 가치만큼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2018 책의 해' 집행위원장을 맡은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가 그렇다. 지난 6월 초 서울 서교동 사무실에서 만난 정 대표는 "'책의 해'는 책 읽기를 어려워하고 싫어하는 젊은 세대를 위한 운동"이라며 "혼자 책 읽는 게 힘들다고 하니, 모여서 같이 읽고 다녀온 맛집 자랑하듯 서로 읽은 책을 자랑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 '책의 해' 실무를 총괄하는 집행위원장을 맡았습니다.
▲ 조직위원회가 올 3월 말 출범하고 본행사인 광화문 광장 축제가 4월에 열렸어요. 1월에 '책의 해'를 선포하고 행사가 바로 이어졌어야 하는데, 많이 늦었죠. (문화계) 블랙리스트 문제 때문에 2월까지 정부와의 긴장 관계가 이어지면서 민간에서 이 행사를 함께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있었어요. 실무 책임자이다 보니 혼자 많이 초조했죠. 긴장 관계가 해소되면서 3월에야 급하게 시작됐고, 정말 어마어마하게 정신이 없었습니다.

-- 30년 넘게 출판인으로 살아왔고 25년 만에 지정된 '책의 해'라 소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 1993년 '책의 해'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진행된 행사만 600여 개였더라고요. 당시 책은 좋은 것, 독서는 무조건 하는 것이었어요. 책이 나오면 그냥 잘 팔리는 시절이었죠.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가장 중요한 매체였고, 책의 가치에 대해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죠. 책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30년 넘게 편집자로 일하고 출판사를 경영하는 대표로서 10명 중 4명이 책을 전혀 읽지 않는 시대에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대신, 그 시간에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집행위원장을) 기꺼이 맡았습니다.

"무궁무진한 세상을 보여주는 게 책"

-- 위원장님에게 책은 무엇인가요.
▲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랐어요. 다락방에 올라가 혼자 책을 많이 읽었죠. 나이에 맞는 책을 가릴 것도 없이 활자로 된 건 다 읽었어요. 수줍음 많은 시골 소녀에게 무한한 세상을 보여주는 게 책이었습니다. 나는 이 좁은 다락방에 있지만 책이 보여주는 세계는 무궁무진했고 정말 신기했어요. 책을 통해 상상하고 호기심을 키웠죠. 특히 '서울에는 이런 미술관이 있구나' '시청 앞에는 이런 게 있구나' 하며 서울에 대한 동경을 키웠고, 서울에 가기 위해 공부했어요. 출판 시장은 늘 어렵다 하고 책을 만드는 것도 읽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책에 관해서라면 한없이 긍정적일 수 있는 것도 이런 어린 시절의 경험이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책에 대한 애정의 원천은 결국 사람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고요.

-- 요즘 아이들은 활자보다 영상이 친숙하죠.
▲ 세태가 바뀌었죠. 독서가 취미라고 하면 학생들은 왕따당한다고 하더라고요. 요즘 어린 친구들, 젊은 세대에게 책은 아예 고민의 대상이 아니죠. 책을 안 사고 안 읽어도 충분히 즐겁다고 하니까요. 다른 매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와 지식도 많지만, 책은 그 이상의 것이에요. 상상력이 가미되는 책 읽기는 무엇보다 능동적인 활동이잖아요.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을 때보다 뇌가 더 활성화된다고 하죠. 책을 읽는 건 또 작가가 보여주는 세상뿐만 아니라 몰랐던 나를 만나는 대화의 과정이기도 하고요. 글만 읽는 것이 아니라 종이 냄새를 맡고, 책장 넘기는 소리를 듣고, 밑줄을 그으며 거의 모든 감각을 동원하잖아요. 인간적인 온기가 책에 있는 거죠.
사실 책 읽기는 혼자 하는 게 맞고, 어느 정도 훈련이 필요해요. 습관이어야 하고요. 최근 활발해진 여러 독서 모임에 가봤는데 참여하는 사람들도 책을 다 읽고 오지는 않아요. 와서 같이 읽는 거예요. 부분적으로 낭독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고, 읽어보고 싶어지고, 읽은 것처럼 흡족해진다고도 하고요. 사람은 외로워서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유지하는데, 책을 매개로 모이면 지적활동이 활성화하고 관계는 더 오래 지속된다고 해요.
그래서 이번 '책의 해' 운동은 혼자 책 읽기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그럼 같이 읽자'고 하는 겁니다. '2018 책의 해' 앞에 '함께 읽는'이 붙은 이유죠. 슬로건은 '#무슨 책 읽어?'입니다. 무슨 책을 읽는지 안부 삼아 묻고 나누자는 의미로 해시태그(#)를 붙였어요. 맛집에 다녀와 소셜미디어(SNS)에 자랑하듯이, 내가 읽은 책을 공유하자는 의미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면 분명 거기에서 도움을 받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외롭다고 하지 말고 함께 읽고, 힘들다고 하지 말고 부분적으로 읽은 것이라도 공유해서 입체적인 독서를 하면 된다는 거죠. 책을 읽는 데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책을 다 읽지 않아도 책의 가치만 이해하게 되면 즐겁게 책을 접할 수 있어요.



올해 '책의 해' 조직위원회가 진행하는 캠페인은 정 위원장이 말하는 이런 문제의식과 고민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대표적인 것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는 물론, 군대, 직장에서 구성원 모두가 참여해 각자 읽고 싶은 책을 보는 '하루 10분 함께 읽기' 운동이다. 정 대표는 "10분이라도 다 같이 어울려 읽다 보면 더 읽고 싶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며 "참여하는 단체에서는 하루의 시작을 책으로 함께 하며 분위기 좋아졌다는 성과도 보고 있다"고 전했다.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 밤늦게까지 문을 여는 책방에 모이는 '심야 책방의 날'도 주목할 만하다. 또 영상 매체나 SNS에 친숙한 세대와 함께하기 위해 책과 관련한 재미있는 영상을 촬영해 SNS로 공유하는 '나도 북튜버' 이벤트, 책과 함께한 순간을 SNS를 통해 전파하는 '위드북 캠페인'을 진행한다.

"스스로 질문 던지게 하는 게 좋은 책"

-- 좋은 책, 나쁜 책이 따로 있을까요.
▲ 어떤 책을 선택했을 때는 끌리는 게 있어서죠. 내게 결핍돼 있거나, 필요로 하는 것일 수 있고요. 편집자의 검증이 들어간, 제대로 된 출판 과정을 거쳐 나온 책이라면 나쁜 책이라고 말할 수 없어요. 편집자로서만이 아니라 독자로서도 그렇게 믿고 있고요. 끌려서 선택했는데 지적으로, 감성적으로 나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덮으면 돼요. 책은 분명 저자가 말하는 것이지만, 독자는 각자 다른 것을 읽잖아요.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저자의 말 중 자신에게 울리는 것을 기억하고요. 저자가 주제를 던져주지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의 대화라고 생각해요. 결국 또 다른 나와 대화하는 방법이 중요한 거죠. 방법이 미숙할 수는 있지만 그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하게 되는 거고요. 나쁜 책은 없지만 좋은 책은 확실히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지적, 감성적으로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책, 내가 가진 화두에 즉답을 주기보다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하는 게 좋은 책입니다.
현대 사회는 복잡하고 계층 갈등이 크잖아요. 나만 외로운 것 같고, 나만 소외당하고 뒤처지는 것 같고, 나만 못 사는 것 같다는 감정들에 휩싸여요. 책을 통해 끊임없이 나와 대화하다 보면 이런 감정들이 해소되고 정신적 풍요로움을 얻게 됩니다. 세상은 바쁜데 현실과 동떨어진 먼 나라의 귀신 이야기는 왜 읽을까요? 이야기는 전승되면서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고 거기에는 인간의 구체적인 경험과 교훈이 녹아있어요. 만약 어떤 이상하고 무서운 이야기가 내 친구나 가족의 이야기라면 아파서 못 읽겠지만, 나와 한발 떨어진 곳의 이야기는 마음껏 즐길 수 있고 지혜와 배짱을 줄 수 있다는 것이죠. 사실 하늘 아래 새로운 책은 없어요. '어떻게 하면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라는 주제는 반복되고, 이미 나온 책이 변주해서 계속 나와요. 끊임없이 책을 만들어내는 것은 인간의 지적활동입니다. 책을 읽는 것도 인간이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나려는 행위이기도 하고요. 인간은 외롭고,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하고, 타인의 온기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책에는 그 온기가 담겨있어요.

-- 인기 드라마에 등장하거나 유명 연예인이 읽는 책들이 폭발적으로 팔리고 있어요. 마음산책도 최근 배우 소지섭 씨가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들고나와 읽은 사노 요코의 '죽는 게 뭐라고'로 재미를 봤죠.
▲ 맞아요. 많이 팔렸어요. 워너원의 옹성우 군 덕에 10년 전 나온 김소연 시인의 '마음사전'도 다시 주목받았고요. 감사한 일이죠. 유명 연예인이 우리가 낸 책을 봐주고, 팬들이 또 그 책을 사서 보게 되니 좋은 일이고요. 하지만 더 좋은 건 일반 독자가 다른 독자에게 책을 권하는 거예요. '2018 책의 해' 행사 중 책 생태계 발전을 모색하는 포럼도 매달 열리고 있는데 첫 번째 포럼에서 장강명 작가가 이런 지적을 했어요. 포털 사이트의 영화 코너를 보면 영화는 누적 관람객 수와 평론가, 관객의 평을 다 볼 수 있고, 그걸 통해 누군가 영화를 봐야겠다고 마음먹는 데 영향을 주고받지만, 책 코너는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 안에서 책을 추천하고 그것이 누군가에게 책을 선택하는 동력이 되어야 해요. '셀럽 효과'가 일시적이라면, 저변에서 독자가 독자에게 추천하는 것은 지속가능한 책 생태계를 유지하는 일이거든요.

정 대표는 1985년 대학 졸업과 함께 출판계에 입문해 30여 년을 편집자로 살아왔다. 2000년 마음산책을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지만, 여전히 자신의 정체성은 '편집자'라고 강조한다.
'책의 해' 집행위원장을 맡게 된 가장 큰 이유도 책과 독자에 대해 원천적인 고민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은 책을 만드는 사람, 즉 편집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새로운 책을 기획하고 만드는 이야기를 할 때 정 대표의 표정은 가장 밝아지고 목소리는 가장 높아진다.

"새 책 나올 때마다 여전히 떨린다"

-- 작가도 독자도 아닌, 중간에 낀 편집자의 매력은 뭔가요.
▲ 어마어마해요. 사실 편집자라는 직업이 어떤 건지 저도 몰랐어요. 처음엔 출판사에서 만드는 잡지 파트에 기자로 들어갔는데 성격에 잘 안 맞았어요. 대학 시절은 항상 운동장 잔디 계단에 누워 책 읽고 생각하는 게 전부였거든요. 글을 쓰고 싶어 기자가 됐지만, 내성적인 성격에 사람을 섭외해서 만나고 마감에 쫓기는 일이 힘들더라고요. 잡지가 경제적인 이유로 휴간되면서 단행본 파트로 옮겨 편집자가 됐어요. 편집자가 된 이후로는 세상에 이런 직업이 있구나 싶었고, 편집자로 일하면서 한 번도 질린 적이 없어요. 시대가 바뀌고 독자가 바뀌고 매번 새로운 원고를 마주하니 항상 1년 차와 고민이 똑같았어요. 편집자로서 늘 새롭게 탄생하는 느낌이었죠. 날것의 원고를 읽으며 내가 첫 독자가 되는 매혹은 강렬하고, 나의 노동이 집약된 결과물이 매끈한 새 책으로 나올 때마다 여전히 떨려요. '나는 세상을 편집한다'는 말도 한 적이 있는데, 내가 만든 책을 읽은 사람이 변화하면, 사람은 세상 안에 사는 것이니 그렇게 세상도 바뀐다고 생각해요. 기획이 중요해지면서 새로운 저자를 발굴하고 설득하는 과정도 구애와 같은 긴장 관계가 있어요.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 안에 깊이 빠져드는 것과는 또 다른 면인데, 이 두 가지 양면성이 나를 살게 하는 힘이에요.

-- 지난해 은행나무, 북스피어와 함께 내놓은 'X시리즈'는 책 제목도 저자도 숨긴 책인데 출판사만 보고 산 사람들이 많았어요. 어떻게 기획된 건가요.
▲ 두 출판사 대표와 셋이서 재작년부터 일본, 유럽으로 서점 기행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일본의 'X문고' 등 블라인드 이벤트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죠. 지난해는 주력하는 장르와 성격이 다른 각 출판사의 색깔을 반영한 책을 골랐어요. 책을 다 가린 채 '재밌을 거예요' '믿어주세요'라고 한 건데 독자들이 정말 믿어주셨어요. 시즌2는 매력적인 한 작가의 다른 작품을 세 출판사가 동시에 내요. 세 출판사의 책을 다 사면 책등이 맞춰지는 거죠. 책 한 권 잘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기획을 통해 독자가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한 작가가 다시 조명되면 좋잖아요. 책을 고르는 데도 새로운 기준이 하나 더 만들어지는 거죠. 책을 사는 동력이 꼭 필요하거나 남들이 다 봐서가 아니라, 블라인드 북이라니까 흥미를 느껴 사보자 하는 거니까요. 그래서 책 만드는 게 좋아요. 이런 예측불허의 즐거움이 있어서….



-- 마음산책은 글과 이미지, 여러 장르의 결합 내지는 융합을 보여주는 '하이브리드 양식'을 내세웠어요. 앞으로의 '하이브리드'는 어떤 모습을 추구하나요.
▲ 2000년 독립해 마음산책을 창업하면서 기존의 정통 출판과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개인적으로 이미지를 중시했기 때문에 창업할 때도 디자이너와 단둘이었죠. 유네스코는 책을 '표지를 제외하고 최소 49쪽인 비정기 출판물'로 정의하고 있지만, 이제 이런 정의는 의미가 없는 시대입니다. 지금은 종이책을 유사하게 옮긴 형태의 전자책을 만들고 있지만, 앞으로는 새로운 독자층에 맞춰 앱북, 카드북처럼 매체를 더욱 확장하는 형태가 될 것 같아요. 책을 많이 내고 매출이 늘어나는 양적인 성장보다는 젊은 독자와 함께 호흡하는 질적인 성장을 추구하고 싶어요. 항상 젊은 감각을 유지하고 준비하면서 새로운 독자를 만나야 한다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요즘 젊은 세대가 어떻게 책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읽는지, 저자와 독자가 어떻게 소통하는지 보고 싶어서 독립출판물이나 소셜미디어(SNS)도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마음산책은 지난 18년 동안 380권의 책을 세상에 내놨다. 주로 산문 위주의 문학서, 예술서, 인문서들이다. 380권을 모두 기억하느냐는 질문에 정 대표는 "기억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책에 얽힌 이야기를 '천일야화'처럼 끝도 없이 할 수 있다"고 답했다.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느냐는 질문은 우문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는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듯, 도저히 고를 수 없다"며 "요즘 어떤 생각을 많이 하는지, 무엇에 빠져 있는지 묻고 거기에 맞는 책을 추천해 주곤 한다"고 말했다.
시집을 낸 시인답게 정 대표의 침실에는 1천 권이 넘는 시집이 꽂혀 있다고 한다. 편집자로서 언어를 벼리는 연습을 게을리할 수 없는데, 시가 가장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시에서 멀어지고 싶지 않아 아침에 일어나면 아무 책이나 꺼내 읽으며 '시점'을 친다. 어느 날 그렇게 꺼내 든 시집이 김승희 서강대 명예교수가 '여성, 여성성, 여성문학'을 키워드로 44편의 시를 골라 해설을 붙인 시선집 '남자들은 모른다'였다. 2001년 정 대표가 직접 출간했지만, 파격적인 표지에 누구나 쉽게 인용할 수 있는 '예쁜 시'가 아니어서 곧 절판된 이 책을 17년 만에 표지만 갈아 올봄 재출간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페미니즘 열풍의 영향도 물론 있었죠. 특히 어머니가 사라진 성경 이야기를 소재로 한 최영미 시인의 '어떤 족보'가 생각났어요. 여전히 새롭고 여전히 가치 있는데 그동안 독자를 못 찾고 있었구나 싶었죠. 꼭 다시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8년 7월호 '인터뷰'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mih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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