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론 커지던 백악관에 崔담화 결정타…"벼랑끝 전술 안통한다"
"회담 자체 아닌 비핵화가 목적…회담장 밖 나갈 준비 돼 있다는 약속 지켰다"
북측, 싱가포르 실무회담 안나타면서부터 기류 심상치 않게 돌아가
전문가 빠진 핵실험장 폐기에도 의문…미 "북, 약속과 신뢰 파기"
트럼프, 트윗발표 아닌 공개서한 형식 눈길…"한글자 한글자 직접 구술"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오전 6·12 북미정상회담 취소를 전격 발표하기까지 전날 저녁부터 백악관 주변이 긴박하게 움직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 측의 태도 돌변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며칠 전부터 연기론의 자락을 깔아두긴 했지만, 이날 오전 9시 50분께(동부시간 기준) 성사를 목전에 두고 갑작스레 이뤄진 발표는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전날 낮만 하더라도 이번 회담의 키맨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의회 청문회에서 낙관적 전망을 한 터였다. 더욱이 이날 오전 6시 폭스뉴스를 통해 전파를 탄 사전 녹화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으로 '단계적 비핵화'를 언급, 회담 성사의 청신호로 해석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회담 무산 소식이 발표된 것이다.
결정적 방아쇠를 당긴 건 전날 오후 8시가 좀 안 돼 날아온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담화였다. 최 부상은 이 담화에서 '리비아 모델'을 언급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원색적 비난을 쏟아냈고 "미국이 우리를 회담장에서 만나겠는지 아니면 핵 대 핵의 대결장에서 만나겠는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과 처신 여하에 달려 있다"고 위협했다.
비핵화 담판을 앞둔 시점에서 최 부상이 담화에 '핵보유국'이라는 표현을 담은 것도 미국의 심기를 건드린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백악관의 한 관계자는 로이터 통신에 "펜스 부통령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인내의 한계'였으며 정상회담을 취소하게끔 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상원 외교위 청문회에서 전날 오후부터 이날 오전까지 회담 취소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백악관 내부 회의가 계속 열렸고, 최종 결정은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 내렸다고 전했다. 최 부상의 담화 발표 이후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심야 마라톤 회의를 이어가며 분주히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이날 오전에 최종 발표에 앞서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등과도 통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부상의 담화가 이번 결정의 직접적 원인이 되긴 했지만,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불신이 누적돼온 가운데 좋지 않은 조짐은 여기저기서 감지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노벨상 수상'을 열망한 나머지 비핵화 담판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거둘 수 있다는 우려가 워싱턴 조야에서 확산한 가운데 북한 측 인사들이 지난주 싱가포르에서 예정됐던 실무회담에 아무 말 없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선행팀 등 일찌감치 현지에 도착해 있던 미국 측 인사들을 바람 맞힌 셈이다.
이 실무회담은 폼페이오 장관이 지난 9일 재방북했을 당시 정상회담의 구체적 실행계획을 논의할 목적으로 북미 양측간에 잡혔던 것이다.
미국 측은 북한에 수많은 연락을 시도했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는 게 폼페이오 장관과 백악관 관계자의 설명이다.
회담 취소 배경에 북한 측의 약속 파기와 그로 인한 불신 누적이 자리 잡았다는 얘기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3월 8일 한국대표단으로부터 김정은의 메시지를 듣고 북한의 비핵화 열망 등 모든 걸 고려해 초청을 수락했고, 그 이후 미국은 선의를 갖고 회담 준비를 위해 상당한 노력을 해왔다"며 약속과 신뢰 파기를 문제 삼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회담 준비 과정을 잘 아는 외국 외교관을 인용, "미국 관리들이 지난주 후반부터 회담이 연기될 수 있다는 신호를 다른 나라들에 보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북미 양측이 이처럼 사전 접촉도 제대로 갖지 못하는 등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회담 진행 방식 등에 대한 실무적인 의견 접근조차 이뤄내지 못했다는 점도 회담 무산의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미 정부 전 고위 관리는 WP에 "양측은 공동성명의 초안 내용에도 합의하지 못한 상태였다"며 보통 이런 종류의 회담에서 한참 전에 조율됐어야 하는 공동성명이 여태 나오지 못했다는 점은 외교관들 사이에서 위험 신호로 받아들여졌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이뤄진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과정도 북한에 대한 미국 측의 불신을 더 했다.
이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북한은 핵실험장을 파괴했다고 주장하는데, 사실이길 바라지만 우리는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북한 인사들이 당초 폼페이오 장관과 한국 측에 국제적 전문가와 관리들의 검증 참여를 약속했던 점을 언급하며 "이 약속도 깨졌다"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아마도 미래에 다시 사용될 수 있는 방법으로 폭파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의구심을 감추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결정은 '전임 정권들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겠다'는 그간의 공언대로 비핵화 목표치를 지나치게 훼손하면서까지 북한의 벼랑 끝 전술에 넘어가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되고 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의 성공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치면서도 '얘기가 잘 안 되면 회담이 열리지 않을 수 있다', '결실이 없을 것 같으면 회담장 밖으로 나가겠다'고 말해왔었다.
이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장 밖으로 걸어나갈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며 "우리의 목적은 회담 자체가 아니라 언제나 한반도의 비핵화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미국과 우리의 동맹들을 위한 안보 문제에 있어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표 형식도 눈길을 끌었다. 아침마다 트윗으로 인선이나 중요 결정 사항을 알렸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공개적으로 보내는 서한 형식으로 회담 무산 소식을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한 내용에 대해 한 자 한 자 직접 구술했다고 백악관 관계자가 전했다.
WP는 이번 회담 무산과 관련, 익명의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회담 며칠 전까지는 구체적 세부사항들이 조율돼야 하는데, 북한 측이 연락을 안 받는 상황에서 백악관은 우위를 잃는 난처한 상황을 겪고 싶어 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회담이 열리더라도 구체적 성과를 얻지 못할 가능성을 우려해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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