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주교단, 아동성추행 은폐 책임지고 교황에 일괄 사표
"특정 국가 주교단 총사퇴 결의는 가톨릭 역사상 처음"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칠레 가톨릭 교회의 주교단이 성직자들에 의한 아동성추행을 은폐한 책임을 지고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칠레의 현직 주교 31명은 18일(현지시간) 바티칸에서 교황과의 사흘에 걸친 긴급 회의가 종료된 뒤 교황에게 일괄 사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지난 16일부터 교황과 면담을 진행해온 칠레 주교단은 페르난도 라모스 칠레주교회의 대변인이 대독한 성명에서 "우리가 저지른 심각한 과오 때문에 피해자들과 교황, 가톨릭 신자들, 칠레 전체가 받은 고통에 용서를 구한다"며 "우리는 우리의 직분을 교황의 손에 맡기기로 했다"고 밝혔다.
교황청의 한 관리는 "한 국가의 주교단 전체가 추문에 휘말려 총사퇴를 결의한 것은 가톨릭 역사상 처음"이라고 말했다.
주교단 총사퇴는 칠레 교회를 뒤흔든 성직자에 의한 아동 성추행 은폐 파문을 칠레 교회와 교황청이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조치로 풀이된다.
교황이 이들의 사퇴를 일괄 수용할지, 아니면 개별적으로 선별해 칠레 주교들의 운명을 결정할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칠레는 가톨릭 전통이 강한 나라이지만, 최근 몇 년 간 가톨릭 교회는 아동 성추행 사제로 현지에서 악명 높았던 페르난도 카라디마(87) 신부의 악행을 은폐하고, 피해자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처하며 뭇매를 맞았다.
칠레 교회의 파문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까지 불똥이 튀었다. 교황은 지난 1월 칠레 방문 때 카라디마 신부의 아동 성추행을 숨긴 의혹을 받는 후안 바로스 주교를 두둔하는 발언을 했다가 현지에서 거센 반발에 처해, 2013년 즉위 이후 가장 곤혹스러운 순방을 경험해야 했다.
교황은 이를 계기로 교황청 특사단을 칠레에 파견해 성추행 은폐 의혹을 재조사하도록 지시했다. 교황은 이후 특사단이 제출한 2천300여 쪽 분량의 보고서를 검토한 뒤 지난 달 11일 "신뢰할 수 있고, 균형 잡힌 정보가 부족해 상황을 판단하는데 중대한 오류를 범했다"며 피해자들에게 깊이 사과하고, 칠레 교회의 주교단을 바티칸으로 긴급 소환했다.
교황청은 칠레 주교단과의 이번 면담을 앞두고 지난 12일에는 이례적으로 강경한 메시지를 발표, 교황이 이번 회동을 칠레 교회에 대한 혹독한 질책과 쇄신의 기회로 삼을 것을 분명히 한 바 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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