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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기사들, 원래 나쁜 사람 아니에요"
책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펴낸 5년차 기사 허혁씨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원래 나쁜 기사는 없다. 현재 그 기사의 여건과 상태가 있을 뿐이다."
전북 전주시에서 5년째 시내버스를 모는 허혁(53) 씨는 최근 펴낸 책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수오서재)에서 이렇게 말한다.
서울의 경우 하루에도 수백만 명이 시내버스를 이용하지만, 그 버스 운전석에 앉은 이들이 처한 여건과 상태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허씨는 이런 대다수 시민에게 격일로 하루 열여덟 시간 대소변, 배고픔, '진상' 승객을 참아가며 빠듯한 운행 시간을 맞춰야 하는 시내버스 기사들의 애환을 담담히 들려준다.
평소 버스 기사의 굳은 얼굴, 불친절함에 불만을 품은 적이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읽고 나서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이런 전환을 통해 타인의 고된 노동으로 만든 서비스를 쉽게 이용하면서 그들의 삶과 노동 조건에는 무관심했던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시내버스가 하루 종일 밟는 노선 구석구석에는 이 버스를 타는 서민들의 복잡한 삶의 지형도 담겼다. 진실한 삶 속에서 단단하게 빚어진 이 책이 공허한 위로와 힐링을 내세운 요즘 서점가 책들 사이에서 단연 빛을 발하는 이유다.
"버스기사에 대한 편견과 완고함이 있는 것 같아요. 기억을 왜곡하는 인간의 속성으로 시내버스 기사는 안 좋은 모습으로만 각인되죠. 사실 구조적인 문제, 열악한 노동 조건에서 기사들이 안 좋은 모습을 보이는데, 단순하게 '버스기사 저 놈들' 하는 인식이 아주 굳어져서 친절한 버스기사가 많은데도 안 좋은 것만 꼭 기억해요."
허혁 씨는 17일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이런 편견을 깨고 싶었다"고 책을 쓴 의도를 밝혔다.
"그런 편견이나 완고함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 것이고, 버스 기사만 잘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이 사회가 성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는 버스 기사들에게 야만적인 노동을 시키면서 기사들에게만 잘하라고 하면 좋은 사회가 아니잖아요. '갑'의 세계관이 일반 시민들의 세계관에도 지배적으로 돌고 있는데, 저는 '을'의 세계관으로 갑이 갖고 있는 편견과 완고함을 깨보고 싶습니다. 그러려고 이 책에서 부단히 노력했어요. 논리적 근거를 갖고 재미있게 납득할 만하게 쓰려고 엄청나게 노력했죠."
페이스북에도 자주 글을 올려 사람들과 소통하는 그는 자신의 글을 보고 버스기사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뿌듯하다고 했다.
"'버스기사가 다시 보인다'는 말이 제일 듣기 좋아요. 심지어 저희 회사 내 사고·민원처리 담당자도 저에게 고맙다고 하더군요. 관리자 입장에서만 봐서 기사들이 왜 그러나 이해를 못 했는데, 제 글을 보니까 이해 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눈물이 났습니다. 내 책이 그런 갑의 세계관에 익숙해 있는, 아무 생각 없이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는 그런 문화에 문제 제기하는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그는 늦깎이로 버스기사가 됐다. 18년간 조그만 가구점을 운영하다 접고 귀농을 원했으나, 아내의 반대에 부딪혀 가출을 감행했다. 가족 품으로 돌아와 2년간 관광버스 운전으로 경력을 쌓고 마흔여덟의 나이에 시내버스 기사가 됐다. 책에는 초짜 기사로 겪은 어려움과 5년간 경험을 통해 얻은 나름의 요령, 그럼에도 지키고자 하는 원칙과 철학이 담겨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실한 직업군이 버스기사라고 생각해요. CCTV 때문에 10원짜리도 삥땅이 없고 오로지 내 몸뚱이로 움직여서 일한 시간만큼 법니다. 정직한 직업이에요. 하루에 열여덟 시간 운전하면서 몸 관리도 엄격하게 해야 하죠. 안 그러면 본인이 시달리니까 스스로 관리를 해요. 겉으로는 의뭉스럽고 불량해 보일지 모르지만, 눈물나게 성실하고 착한 사람들이에요. 단지 (승객들에게) 무시당하거나 해코지 당하지 않기 위해서, 공격당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위악을 떠는 거예요. 저만 해도 덩치가 작아서 만만하게 보이니까 (승객들이) 잘 건드려요. 영감님들이 스트레스 받으면 버스기사한테 풀고, 민원 고발하면 기사들이 피곤해질 걸 아니까 더 괴롭힙니다. 한때는 머리도 빡빡 깎았고 지금은 고글을 쓰고 다녀요. 날카롭게 보이려고요."
이 책에는 버스기사인 그와 승객 사이의 여러 실랑이가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한 예로 승객들 입장에서는 자리에 앉은 다음에 버스가 출발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배차 시간을 맞춰야 하는 현실에서 기사들은 그럴 수가 없다.
"승객이 가파른 계단을 오른 뒤 요금 내고, 관성의 법칙을 거스르며 자리를 잡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짐이 많은 분, 지팡이 든 노인, 아이 있는 엄마는 시간을 좀 더 주긴 하는데, 딱 봐서 칠십 세 이하는 일 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간다. 물론 시그널은 준다. "가요, 잉!"" (본문 21쪽)
책을 읽다 보면 웬만한 기성작가 뺨치는 매끄러운 글과 사유의 깊이에 놀라게 된다. 그는 이 책 서문에 "하루 열여덟 시간씩 버스를 몰다 보면 천당과 지옥을 수시로 넘나든다. 때로 책 보며 오래도록 나를 관찰해왔던 습관 때문인지 시내버스운전 2년이 넘어가자 글이 절로 써졌다. 버스운전 중에 문득문득 글이 올라왔다"고 썼다.
범상치 않은 글솜씨 비결을 묻자 그는 "버스요정이 불러주는 대로 받아적었을 뿐"이라며 웃었다.
"시내버스 기사들이 처한 노동조건이 워낙 열악했고, 그것이 교묘하게 자기착취나 학대로 이어지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내 능력이 아니라 신탁을 받은 것처럼 썼어요. 몸의 한계를 뛰어넘는 노동을 하다 보면 어느덧 내가 맑아져 있어요. 그 임계점을 넘는 지점에 내가 보여요. 무엇을 써야 할지 알게 되죠. 운행날 글 첫줄을 잡고 다음날 부리나케 쓰는데, 피곤하니까 폼잡고 쓸 수도 없고 생각했던 걸 쭉 써본 뒤에 수정은 운전하면서 머릿속으로 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시내버스 기사가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닐 터. 그의 남다른 내공은 오랜 독서 경험과 관련 있어 보인다.
"영세 자영업자로 18년간 빚을 갚으며 살 때에도 책은 계속 봤어요. 손님이 없을 때 책을 봤는데, 점점 독서 수준이 높아졌죠. 인문과학에서 자연과학으로 넘어가 뇌과학, 우주론, 진화론, 융의 정신분석까지 읽었습니다. 장사가 질리고 우울증이 심한 상황에서 어떤 내적인 열망으로 삶의 탈주를 시도했죠."
그는 인터뷰 말미에 이런 당부도 했다.
"이제 주 52시간 노동이 시행되면서 시내버스 기사들도 1일2교대 근무를 해야 하는 데요. 버스기사 수가 부족하다 보니 경기도는 8천명가량 더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러면 버스회사에서는 노선을 축소할 수밖에 없다고 오기를 부리고 대책을 세워달라고 지원을 요구하겠죠. 이 문제가 지금은 북미정상회담과 지방선거에 묻혀서 잠잠하지만, 굉장히 큰 이슈가 될 거예요. 제 책이 사실은 정부가 정책 방향을 잡는 데 참고할 만한 자료가 될 수 있다고 봐요. 버스 노동자 70%가 임금이 줄어든다고 2교대를 원치 않는 현실인데, 우리 사회가 그만큼 깊이 병들어 있다는 거겠죠. 정부가 올바른 판단을 해주길 바랍니다."
min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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