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싱 우려에 여전히 속타는 中…모호성 유지로 애태우는 北
北 "중요문제에 북중 견해 재확인"…종전선언 中참여 '이견 확인'
"北 모호성 유지, 차후 북중관계에서 지렛대로 활용할 심산인 듯"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 중국이 왕이(王毅)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북한에 급파해 한반도 평화구축 과정의 1차 관문이라고 할 '종전선언'에 소외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결과는 여전히 불투명해 보인다.
방북한 왕 국무위원이 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난 데 대해 중국 외교부가 직접 나서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로 대화 내용을 신속하고 상세히 소개했으나, 그와 관련한 북한의 반응과는 '온도 차'가 있다.
중국이 거의 실시간으로 김정은-왕이 회동을 알린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세간의 '차이나 패싱(배제)' 우려를 불식하려는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남북 정상이 남북정상회담에서 연내 종전선언과 그와 관련해 '3자 또는 4자 회담'을 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뒤로 중국은 종전선언 논의는 남·북·미·중 4자 논의를 거쳐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피력하면서 이를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비쳐왔다.
자오퉁(趙通) 칭화대-카네기 세계정책센터 연구원은 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 인터뷰에서 "중국은 한반도 평화 협상에서 중국이 자리를 차지하지 못할까 우려할 수 있다"며 "왕 국무위원은 중국이 포함되는 4자회담이 성사될 수 있도록 북한을 설득하는 작업을 벌일 것"이라고 분석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중국 외교부장으로는 11년 만에 방북한 왕이 외교부장은 중국 수뇌부의 차이나 패싱 우려를 전달하고 조율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은-왕이 면담후 중국 외교부가 공개한 자료를 봐도 자국이 종전선언을 포함한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 과정에서 배제될 수 없다는 절박감이 묻어났다.
왕 국무위원은 우선 김 위원장에게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에 도움이 되는 계기를 제공했다"고 한껏 띄워 작금의 긍정적인 한반도 정세 변화의 주역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한반도 종전과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왕 국무위원의 이 발언은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논의에 중국이 빠질 수 없다는 점을 역설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를 근거로 왕 국무위원이 김 위원장에게 그와 관련된 '중국의 역할론'을 강조했음을 추론해볼 수 있다.
자칫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 과정에 참여하지 못하는 신세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 셈이어서 중국으로서는 이런 우려를 조기에 불식하는 일이 중요한 외교적 과제가 된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YNAPHOTO path='AKR20180504031900014_01_i.jpg' id='AKR20180504031900014_0101' title='시진핑과 김정은(PG)' caption='[제작 이태호] 사진합성, 일러스트'/>
그러나 북한의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김정은 위원장이 3일 왕 국무위원을 만났지만 화끈한 답변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중앙통신이 4일 김 위원장의 왕 국무위원 면담 소식을 전하면서 "조중 두 나라 사이의 단결과 전통적인 친선협조관계를 전면적으로 계승하고 심화·발전시킬 데 대해서와 조선반도 정세 흐름의 발전 방향과 전망을 비롯한 호상 관심사로 되는 문제들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의견교환이 있었다"고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과 중국의 고위 인사가 만나면 항상 나오는 의례적인 표현이다.
특히 중앙통신은 "최고영도자 동지께서는 왕이 동지와 훌륭한 담화를 나누면서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조중(북중)의 견해를 재확인하고 의견을 교환한 데 대하여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셨다"고 소개했다.
외교적 수사로 볼 때 상대의 견해를 재확인했다는 것은 특정 사안들에 대해선 서로 이견을 보였다는 의미라는 점에서, 종전선언 3자 또는 4자 회담에 대한 의견이 달랐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와 관련해 만약 김 위원장이 중국측의 입장에 수긍하고 의견 접근이 있었다면, 북중 간 외교적 수사의 전례로 미뤄 중앙통신이 '견해 일치' 등의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김 위원장과 왕 국무위원이 회담하면서 각자의 입장을 밝히고 합의에는 도달하지 못했음을 짐작케 한다.
결국 김 위원장은 중국측의 4자회담 참여 요구에 원칙적인 입장만 밝히는 외교적 모호성을 유지함으로써 앞으로 이어질 북중관계에서 지렛대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는다.
정재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북한이나 중국이나 한반도 평화 논의를 3자냐, 4자냐 어느 한쪽으로 결론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라며 "일단 북중 양쪽 모두 이 문제를 모호하게 해 놓고 앞으로 상황을 보면서 논의해 가겠다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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