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선언] '비핵화-평화' 프로세스 시동…동북아 '새판짜기'
미, 北과 담판 통해 '비핵화 로드맵' 이끌기…중, '종전선언'·평화협정 논의 개입
러,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제 구축 시도…일, '재팬패싱' 탈피 위해 한미일 협력 강조
(서울=연합뉴스) 박인영 기자 = 남북 정상이 27일 '완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공식 추진하는 내용의 '판문점 선언'에 합의함에 따라 동북아 외교에 일대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의 구도가 대화와 협상의 프로세스로 극적 전환됨으로써 동북아 역내 질서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해졌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한반도 현안에 적극 개입하며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주변 4강(强)의 외교적 각축이 가일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판문점 선언에 따라 앞으로 동북아 정세의 흐름은 '비핵화'와 '평화체제'라는 양대 바퀴로 굴러갈 가능성이 커졌다.
일단 '비핵화 트랙'은 북미가 중심축일 수 밖에 없다. 북한이 미국의 핵 위협에 맞서 자위적 수단으로 핵 개발을 해왔다고 주장해온 만큼 다음 달 또는 6월 초로 예상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담판'에서 큰 틀의 해법이 나올 것으로 관측된다.
남북 정상이 이날 판문점 선언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 목표에 합의한 만큼 앞으로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로드맵'이 도출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졌다.
북미 비핵화 담판의 '예비전'으로 인식돼온 이번 회담에서 북한이 '핵없는 한반도'에 공식 동의하면서 미국으로서는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목표에 한층 더 나가서게 됐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시간 끌기와 단계적 보상 전략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협상 초기에 '빅딜'을 통해 결판을 내는 이른바 '빅뱅 접근법'을 구사할 가능성이 커보인다. 자신의 임기내인 2020년까지 비핵화 달성 시한을 정하고, 단계별 보상없이 최단시간 내에 핵폐기를 이뤄내기 위한 총력전을 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북미가 순조롭게 비핵화 로드맵에 합의할 수 있을지는 아직 물음표다.
비핵화 협상은 북미 양자 틀에서 시작되지만, '종결'은 6자회담 틀 내에서 이뤄질 수 밖에 없다. 단계별 이행과정과 검증, 보상 등의 문제를 놓고 다자간의 공조와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과거 의장국을 맡았던 중국은 6자회담 재개에 적극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보이며, 이 과정에서 그간 한반도 논의 과정에서 소외감을 느꼈던 러시아와 일본이 뛰어들 가능성이 크다.
더 치열한 외교적 각축이 예상되는 것은 '평화체제 트랙'이다. 그 핵심은 남과 북이 올해 안에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그 속성상 비핵화의 진전과 연동될 수밖에 없다. 북미 간에 비핵화 로드맵이 합의되고 순조롭게 이행되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이지만, 비핵화의 진전이 없다면 평화체제 논의가 진척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논의는 한국전쟁을 치른 당사자들인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간의 합의를 전제로 한다. 앞으로 이들 3자 또는 4자간 협의가 평화체제를 비롯해 한반도 전체의 질서재편을 주도할 것이라는 의미다.
특히 최근 한반도 정세 급변 논의가 남북미 3자 구도로 이뤄지면서 영향력 약화를 우려하던 중국으로서는 이번 판문점 선언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 논의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명분이 생겼다. 정전협정 당사국으로서 전면에 나서려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러시아와 일본은 이에 뒤질세라 새로운 논의의 틀을 제시하며 개입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러시아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구도를 정착시키려면 6자회담 틀 내에서 동북아 다자안보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미 러시아는 지난해 중국과 제시한 한반도 사태의 평화적·단계적 해결방안을 담은 '로드맵'에서 북미·남북한 간 직접대화로 상호 관계를 정상화하는 단계를 거쳐 다자협상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 지역 안보체제 등을 논의하는 단계별 구상을 제시했었다. 동북아 역내에서 미국의 독주를 견제하려는 러시아로서는 자국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6자회담으로의 확대를 강하게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도 자국 내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 북일 대화 재개에 사활을 걸고 있는 만큼 '재팬 패싱'(일본 배제) 구도에서 탈피하기 위해 한반도 문제에 대한 개입력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동맹'인 미국과 공조를 강조하고 '한미일' 삼각협력 구도를 이용하면서 평화체제 논의에 발을 담그려할 가능성이 있다.
이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판문점 선언에 관해 "이번 선언을 과거 성명과 비교, 분석하면서 앞으로 대응할 것"이라며 "납치와 핵·미사일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한미일간, 중국 및 러시아와 확실히 연대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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