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 아닌 헌법재판관·헌재소장 호선…'파격·탈권위' 평가
사법제도 개선안 반영한 개헌안…헌재소장 임명권 삭제에 법조계 '공감'
국민 재판 참여, 독점적 재판권 견제할 듯…대법원장 인사권 놓고는 '찬반' 갈려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청와대가 22일 발표한 개헌안에는 사법제도를 개혁하기 위한 정부의 여러 구상이 담겨 있다.
법관 자격이 없어도 헌법재판관에 임명될 수 있도록 하는 등 제도적 파격을 통해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가 사법에 반영되도록 하고 사법부 인사에 미치는 대통령이나 대법원장의 영향력을 줄여 사법기관의 자율성을 높인다는 취지가 담겼다.
법조계에서는 헌법재판관의 자격을 법관 자격이 없는 자로까지 개방한 개헌안 내용을 두고 헌법재판의 본래 취지에 충실한 방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현행 헌법 111조 2항은 헌법재판관을 법관 자격을 가진 자로 못 박고 있다. 법률상 법관 자격은 통상 '변호사 자격을 가진 자'로 해석된다. 변호사 자격없이 대학에서 법학을 가르치는 법학교수 등은 헌법재판관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법조계 일각에서는 사회의 다양한 관점을 고려해 헌법적 결단을 내리는 헌재가 너무 폐쇄적인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헌재도 일찌감치 이런 문제의 해법을 검토했지만, 헌법재판소법이 아닌 헌법에 규정된 사항이라 개정이 쉽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를 예고한 개헌안은 이런 문제의식에 따라 헌법에서 '법관 자격' 문구를 삭제하도록 한 것이다.
국민의 목소리가 사법에 더 많이 반영되도록 한다는 뜻은 '국민의 재판 참여'를 헌법에 명시하겠다는 개헌안 내용에서도 읽힌다. 판사의 독점적 재판권을 견제하고 국민의 사법 참여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이미 국내 법원에서도 일부 사건에서 국민 참여재판을 하고 있지만 유·무죄를 판단한 배심원의 결정은 재판부에 권고하는 수준에서 효력이 그친다. 미국의 배심제나 독일 참심제처럼 배심원 결정이 재판부의 판결에 미치는 효력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편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개헌안은 대통령의 헌법재판소장 임명권을 삭제하고 헌법재판관들끼리 내부에서 뽑는 호선 방식으로 소장을 정하도록 했다.
지나치게 집중돼 있다는 지적이 많던 대통령의 권한을 내려놓는 점에서 '탈권위'라는 취지를 살리는 동시에 헌재소장 임기논란까지 해결하는 묘안이라는 반응이 법조계에서 나온다.
실제로 헌법에서 대통령의 헌재소장 임명권 조항이 삭제되면 헌재소장을 교체할 때마다 불거진 임기논란이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행 헌법은 대통령이 헌법재판관 중 한 명을 헌재소장에 임명하도록 규정하지만, 임명된 헌재소장의 임기와 관련해서는 별다른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헌법은 물론 헌법재판소법에도 임기 조항을 두고 있지 않아, 헌재소장의 임기를 헌법재판관 잔여임기로 해야 하는지 새로 6년의 임기가 시작되는지를 두고 의견 충돌이 잦았다. 여야의 정치적 득실문제까지 얽혀 있어 대책을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아예 대통령의 헌재소장 임명권을 폐지하겠다고 밝히면서 헌재소장 임기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
헌재 관계자는 "헌법재판관들의 자유로운 호선을 통해 헌재소장을 선출하게 되면 임기문제는 더는 논란거리가 될 수 없다"며 "헌법재판관들이 1∼3년 터울로 헌재소장을 돌아가면서 맡게 되면 자연스럽게 논란이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헌재소장을 헌법재판관들이 호선하는 제도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루마니아, 헝가리, 몽골, 캄보디아 등에서 시행하고 있다.
<YNAPHOTO path='AKR20180322120200004_05_i.jpg' id='AKR20180322120200004_0501' title='' caption=''/>
반면 대법원장의 인사권을 대폭 축소한 개헌안 내용을 두고는 법원 내부에서 다양한 의견이 혼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관 추천위원회를 거쳐 대법원장이 대법관을 임명제청하도록 한 개헌안 내용은 대법원이 이미 내부규칙을 통해 시행하고 있어 논란이 적다.
반면 대법원장의 법관 임명권과 헌법재판관 3인 지명권을 대법관회의로 넘기는 방안을 두고서는 찬반 의견이 사법부 내에서도 엇갈린다.
상당수 판사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 초기부터 대법원장의 권한을 상당 부분 내려놓겠다고 약속한 만큼 개헌안에 적극 찬성한다"며 "대법원장 1인에 의해 운영되던 법원조직이 사실상 합의제기구로 탈바꿈하는 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반면 일부 판사들은 "3천명이 넘는 법관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통합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대법원장이 권한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며 "전국 법원장회의나 전국법관대표회의 등을 통해 법원 내 민주적 의견 수렴 제도가 자리 잡은 상태에서 대법원장의 권한마저 필요 이상으로 제한하는 게 바람직한지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엇갈린 기류를 의식한 듯 대법원은 이날 찬·반 입장을 정하지 않은 채 "사회 각층의 개헌요구에 관해 여러 의견을 다각도로 듣고 깊이 있게 논의해 사법부의 최종적인 입장을 정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개헌안에서 군사재판을 폐지하는 방안을 두고는 법원에서 대부분 그 필요성에 공감하는 목소리가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hyu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