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 앓는 역사교과서…'대한민국 수립' 이어 '민주주의' 논쟁
(세종=연합뉴스) 고유선 기자 = 중학교 역사·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가 국정 체제 폐기 반년 만에 다시 논쟁에 휩싸였다.
5일 교육부 등에 따르면 새 검정 역사·한국사 교과서 집필기준을 마련 중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지난달 공청회를 열어 정책연구진이 마련한 안을 공개했다.
이 안에서는 예전 집필기준에 쓰였던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 대신 '민주주의'라는 표현이 쓰였다.
예를 들면 고등학교 한국사 집필기준에는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 대해 파악한다', 중학교 역사 집필기준에는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 과정을 이해한다'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생들이 바뀐 교육과정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 수업하는가가 (새 검정교과서 개발의) 본질적인 문제인데 너무 단어 하나만 보는 것 같다"며 "다른 사회과 교과서에 '민주주의'라는 표현이 쓰여 통일성을 고려한 것뿐 다른 의미는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논란은 이미 이념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바른정당은 3일 논평을 통해 "역사교과서에서 자유민주주의는 이미 큰 홍역을 치렀다. 이 정부 들어 굳이 되돌리려는 것은 다시 불필요한 이념 논쟁을 되풀이하겠다는 작심"이라고 지적했다.
'자유민주주의'를 둘러싼 이념 논쟁은 이미 수십 년간 이어져 왔다.
2000년대 중반까지 활용했던 중·고교 국정 국사 교과서는 대부분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함께 사용했다.
노무현 정부가 2007년 교과서 집필기준을 도입할 당시에는 '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쓰였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새 교육과정에는 '민주주의' 대신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이 들어갔다.
진보 진영에서는 '자유민주'란 표현이 1970년대 유신헌법에 처음 등장한 표현이라는 점 등을 들어 '민주주의'라는 표현이 더 중립적이면서도 충분히 의미 전달이 가능한 표현이라고 보고 있다.
이에 비해 보수 진영에서는 1987년 만들어진 현행 헌법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언급했고 '자유'를 빼면 사회민주주의나 인민민주주의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논란이 예상되자 교육부는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해명자료를 내고 이번에 발표된 안이 정책연구진의 견해일 뿐 정부의 공식 입장이나 최종 시안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정책연구는 통상 정부나 산하기관이 발주하고 연구 진행 상황을 정부와 공유하기 때문에 연구진의 의견이 정부의 정책 방향과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교육계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념 논쟁에 휘말리면서 역사교과서가 오롯이 교육적인 관점에서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시절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했던 교육부는 교과서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표현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꾸면서 진보 진영의 강한 비판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안이 상징적인 의미가 크고 파급력이 강하다는 점을 고려해 교육부가 정책숙려제 대상으로 삼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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