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도 미투 본격화?…여성영화인 120명 공동 성명
"구조적 성차별 시정하라"…일부에서는 가해자 적시 않은 것에 불만도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성폭력·성추행을 고발하는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캠페인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이탈리아의 여성영화인 120여 명도 여기에 동참했다.
영화배우, 감독, 제작자 등이 망라된 이탈리아 여성 영화인 120명은 2일 일간 라 레푸블리카 등 주요 신문에 실린 '공동 항의'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영화 산업에 만연한 성차별과 여성에 대한 성적 학대를 고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우리는 한 명의 '치한'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게 아니라 시스템 전체에 항의하는 것"이라며 영화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퍼진 여성에 대한 폭력과 성차별을 시정하고, 남성과 여성 사이의 새로운 균형을 모색하기 위해 연대하려 한다고 밝혔다.
이번 성명에 참여한 사람 가운데는 톰 크루즈, 더스틴 호프만과 함께 영화 '레인 맨'(1988년)에 출연했던 배우 발레리아 골리노, 나폴리 마피아를 다룬 인기 TV 시리즈 '고모라'를 공동 감독한 프란체스카 코멘치니 등 유명인들도 포함됐다.
이탈리아 출신 중견 배우 겸 감독인 아시아 아르젠토가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에게 20년 전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발하며 와인스틴의 성추문이 세계적인 미투 운동으로 확산하는 데 불을 지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탈리아 사회에서는 현재까지 미투 운동이 크게 번지지 않은 상황이다.
아르젠토의 폭로 이후 이탈리아에서도 '시네마 천국'으로 유명한 영화감독 주세페 토르나토레,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파우스토 브리치 등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고발이 이어졌으나 할리우드나 다른 나라처럼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오히려, 아르젠토 등 성추행을 고발한 여배우들에게 일부 언론과 소셜미디어 상에서는 "유명세를 얻기 위해 폭로했다", "성공을 위해 자발적으로 매춘에 응한 것" 등의 비난이 역으로 가해진 현실이다.
이에 상처받은 아르젠토는 고국에서의 비난에 부담을 느낀다며 당분간 이탈리아를 떠나 있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날 공동 성명을 낸 여성영화인들도 이런 분위기를 지적하며 "성폭력 고발은 잠시 동안 큰 공분을 일으켰으나, 곧 종료됐고 사람들은 성추문 희생자들의 발언의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고 한탄했다.
이들은 이어 "그들은 이런 방식으로 우리에게 재갈을 물리려 하고, 특히 과거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입을 열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해볼 것을 요구한다"며 "하지만, 이제 두려워하는 것을 멈출 때"라고 강조했다.
한편, 전세계적인 미투 운동에 불을 지핀 아르젠토는 가해자를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고, 시스템 전체를 문제삼은 이번 성명에 불만을 나타내며 서명에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르젠토는 트위터에 "구체적인 행동을 기다리고 있다"며 "(성폭력 가해자를)고발하고, (여성들이)서로 돕고, 트라우마를 공유하고, 거리로 나가 가부장제에 대한 진정한 항의를 외치는 것 말이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는 연대하고, 함께 싸울 수 있다"는 글을 남겼다.
토르나토레 감독에게 20년 전 성추행을 당했다고 털어놓은 배우 미리아나 트레비산도 "좀 더 정직해지자. (영화계의 성차별적)시스템이 너무 공고해 일자리를 잃을까봐 부적절한 행동을 한 인물을 폭로하지 못하는 거 아니냐"며 가해자를 특정하지 않은 이번 성명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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