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판소리·무용 등 한 무대에…'올림픽 정신' 표현
평창겨울음악제 개막공연 리뷰…프로그램 몰입도는 아쉬워
(서울=연합뉴스) 최은규 객원기자 = 실로 풍요로운 음악의 성찬이었다. 이처럼 다양한 종류의 음악이 한 무대에 펼쳐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웠다.
총 14곡으로 이루어진 2018 평창겨울음악제 개막공연 프로그램은, 지난 2004년에 시작해 14년간 계속된 평창대관령음악제(여름 축제·옛 대관령국제음악제)의 역사와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저명 연주자들의 수준 높은 실내악 연주, 동시대 음악에 대한 관심, 무용과 음악의 접목을 통한 예술 장르의 융합. 그 모든 것들이 이번 공연에 모두 녹아있다.
공연 프로그램만으로도 이번 음악회는 18세기 후반 빈의 음악회 프로그램의 다양성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모차르트가 활동하던 18세기 후반기 빈 청중은 교향곡의 한 악장이 연주된 후 성악가의 아리아와 실내악곡, 피아니스트의 기교적인 즉흥연주 등이 다채롭게 펼쳐지던 긴 음악회에 익숙했다. 다만, 18세기 빈 청중이라도 평창겨울음악제 개막공연의 다채로움을 소화해내기 어려웠을 것 같다.
30일 밤 8시부터 11시까지 예술의전당 무대에서 계속된 이번 개막공연엔 총 20명의 예술가가 출연해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정통 클래식 명곡으로부터 판소리와 서양음악을 접목한 신작과 춤과 클래식 음악이 조화된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공연을 선보이느라 쉴 틈이 없었다.
공연이 이루어진 3시간 동안, 관객들은 18세기 말부터 21세기에 이르는 오랜 시간과 아시아와 유럽, 남아프리카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 음악과 춤, 동양과 서양을 넘나드는 다양한 예술을 체험한 셈이다.
음악회 첫 곡으로 고전주의 실내악 명곡으로 꼽히는 모차르트의 현악4중주 K.458 '사냥'의 1악장이 미켈란젤로 콰르텟에 의해 연주된 후, 곧바로 하이든의 피아노 트리오 F장조와 춤이 어우러진 특별한 무대로 이어졌다. 무용가 김유미의 안무와 춤을 통해 하이든 음악의 생동감은 사랑의 기쁨을 나타낸 활기찬 발레에 의해 새롭게 다가왔다.
하이든의 실내악곡에 이어 베토벤의 피아노 트리오 '유령'의 1악장이 연주됐고 곧바로 한국 출신의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의 2중주곡 연주가 이어졌으며, 하피스트 라비니아 마이어의 '아리랑 변주곡'이 연주되었다.
이처럼 다채로운 무대는 춤과 함께 한 마스네의 곡과 라벨의 곡에 이어 공연 후반에 판소리와 서양음악을 접목한 임준희의 신작 '평창 흥보가'에서 절정에 달했다. 안숙선 명창과 첼리스트 정명화 등에 의해 '평창 흥보가'가 연주되자 공연장의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고, 이번 공연은 모든 음악이 어우러진 축제의 장처럼 느껴졌다. "하나 된 열정"이라는 평창동계올림픽의 슬로건을 연상시키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공연 후반부 연주가 진행될수록 관객들의 공연 몰입도가 확연히 떨어졌다. 흥을 돋우는 '평창 흥보가'와 카사도의 '사랑의 말' 연주에 이어 매우 진지한 슈베르트의 실내악곡으로 꼽히는 현악5중주 1악장이 연주되고 차이콥스키의 현악6중주곡 연주가 이어지자 여러 관객이 음악회 중간에 공연장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 때문에 후반부 공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가레스 루브의 신작 '우분투-자유를 향한 기나긴 걸음'과 카살스의 '새의 노래'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남아프리카 출신의 비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루브는 인류의 결속을 담은 아프리카의 단어 '우분투'를 제목으로 하는 신작을 선보이며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전했고, 비올라 연주뿐 아니라 기본음의 주파수 외의 배음(倍音·overtone)까지도 소리 내는 독특한 배음 창법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지나친 다채로움으로 인해 공연 후반부에 공연의 집중도는 다소 떨어졌으나, 서양 클래식 음악과 한국 전통음악, 이 시대의 신작과 춤 등이 한데 어우러진 이번 공연은 평창동계올림픽의 메시지를 음악적으로 표현했다는 데 의미가 있는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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