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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DA 타고 남미로] ⑦ "봉사로 일자리 찾아라" 임연식 시니어 봉사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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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DA 타고 남미로] ⑦ "봉사로 일자리 찾아라" 임연식 시니어 봉사단원

네팔 이어 페루서 3번째 해외봉사…"해외서 고생하다 보면 진로 명확해져"



(리마=연합뉴스) 정규득 기자 = "해외봉사 자체를 일자리로 볼 수는 없겠지만, 이런 곳에서 고생을 하다 보면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할지 그 길이 분명히 보일 것입니다."

KOICA 시니어 봉사단원인 임연식(여.66) 씨는 페루 수도 리마의 빈민가에 있는 산타루즈밀라 보건소에서 일한다. 한국 정부가 지어 무상으로 기증한 곳이다. 보건소 건립에는 약 25억 원이 들었다.

임 씨에게 해외봉사는 세 번째다. 2004년과 2007년 네팔에서 2년씩 봉사단원 생활을 한데 이어 2015년 12월 다시 페루로 건너왔다. 임 씨는 이곳에서 고혈압 환자들에게 자신이 개발한 건강체조를 가르친다. 이 지역 주민들의 고혈압 유병률은 무려 70%에 달한다. 열악한 환경에다 한국 사람은 입에도 못댈 정도로 짜게 먹는 식습관 탓이다.

"대부분 환자들이 배가 나오고 과체중으로 무릎 관절이 좋지 않아 푸시업이나 계단 오르기를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다리와 복부의 근력을 키우는 맞춤형 체조를 만들었지요. 첫 번째 3주는 20분, 2단계 3주는 40분, 마지막 3주는 1시간씩 합니다. 그렇게 9주가 지나면 집에서 혼자서도 할 수 있지요."


충남 논산 출신의 임 씨는 한국에서 약 30년간 간호사 생활을 했다. 대학병원에서 8년, 서울 강서구와 도봉구 보건소 등에서 공무원으로 20년을 살았다. 2000년 경기 남양주시 보건소를 끝으로 공무원 생활을 청산한 이후에도 일반 병원에서 2년간 간호사로 살다 2004년 네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임 씨는 자신이 '봉사 유전자'를 타고 난 것 같다고 했다. "친정 쪽 피가 그렇답니다. 증조부께서 요즈음으로 치면 통장을 하셨는데 뒤뜰에 올라 굴뚝에서 연기가 나지 않는 집을 살피고는 쌀이나 땔감을 갖다 줬다고 해요. 할머니도 병원에서 사용하는 재생 거즈를 위해 피고름이 묻은 거즈를 많이 빨았다고 하더라고요."

고등학교 다닐 때 봉사를 하려 나환자촌을 찾아갔더니 호주 출신의 봉사요원이 "아직은 때가 아니니 졸업 이후에도 자신이 있으면 그 때 다시 오라"고 해서 발길을 되돌려야 했다. 그러고는 한동안 잊고 살다가 2004년 김혜자 씨가 쓴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를 읽고는 곧바로 KOICA 시니어 봉사단원에 지원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봉사 DNA'를 그 책이 결정적으로 일깨웠어요. 따로 살던 아들 가족과 살림을 합쳐 남편을 맡길 수도 있고, 20년 공무원 생활로 경제적인 여유도 있었기 때문에 전혀 망설임이 없었죠. 남편은 제가 해외에서 혹시 사기를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은 하면서도 반대를 하지는 않았답니다."

네팔에서 처음 봉사활동을 하고 있을 때 남편이 현지에 나왔는데 기온이 53도까지 올라갔다. 다들 23년 만의 더위라며 난리였다. 남편은 정작 봉사활동을 하는 아내보다 더 힘들어했다. 그래도 그때 휴가를 내고 함께 히말라야를 여행한 것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 남편은 네팔에서 두 번째 봉사를 할 때 세상을 떠났다.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임종은 못했지만 장례식엔 참석할 수 있었어요. KOICA에서 워낙 신속하게 조치를 해줘서 만 하루도 안돼 한국으로 갈 수 있었네요."


두 번째 봉사를 마치고 귀국한 뒤 몇년을 지내다 보니 또다시 해외봉사 욕구가 발동했다. 이번엔 다른 지역을 경험하고 싶었다. 그래서 택한 곳이 한국과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남미의 페루. 이곳에도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은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페루에서의 일상도 눈코 뜰 새가 없을 정도로 바쁘다.

"환자들이 오면 혈압을 재고, 상담을 하고, 건강 관련 캠페인에 나가고, 또 재해가 발생하면 현장으로 출동하기도 하고…매일 생활이 그래요. 저도 건강체조를 함께하다 보니 근육량이 젊은 사람 못지 않아요(웃음). 참 이곳에 한국 중소기업 인바디 제품이 있는데 아주 훌륭합니다. 처음엔 한국 제품인지도 몰랐네요."

임 씨는 한국 정부가 일자리와 연계된 ODA(공적개발원조)를 추구하는 데 대해 KOICA 봉사단원 생활 자체를 일자리로 보기는 힘들다면서도 전혀 무관한 일은 아니라는 견해를 밝혔다.

"해외에서 봉사 생활을 하다 보면 시야가 넓어지고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도 확실한 무언가를 찾을 수 있습니다. 봉사단 적립금(KOICA가 월 50만 원씩 적립해 귀국후 지급)으로 대학원에 가거나 국제기구 등으로 진출하는 젊은이도 여럿 봤지요. 인생의 방향을 확실히 잡을 수 있는 기회라는 것만큼은 틀림없습니다."

임 씨는 올 연말 페루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 귀국 후에는 용인에 있는 '샘물의 집'을 통해 국내 호스피스에서 봉사활동을 이어갈 계획이지만 또다시 해외로 나갈 생각도 없지는 않다고 했다. 네팔과 태국, 브라질 등에 '샘물의 집'과 연계된 봉사기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설명도 보탰다.

봉사에 대한 끝없는 열정은 임 씨에게 제4회 대한민국 해외봉사상 국무총리 표창 수상의 영예를 안겼다. 그는 "자동차 운전은 70살까지만 하겠지만 봉사에는 연령제한이 없는 만큼 더 늙어서 몸을 아예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는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봉사는 끝없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wolf85@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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