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서 한국인 살해 교사한 40대, 경찰 4년 수사끝 구속
현지 탐문수사로 범행 조력자 진술·증거 확보…범인 결국 자백
"해외 청부살인범 검거 안돼도 한국인 교사범 처벌 첫 사례"
(서울=연합뉴스) 안홍석 기자 = 2014년 발생한 '필리핀 한국인 관광객 청부살인 사건'의 한국인 교사범이 4년에 걸친 경찰의 끈질긴 수사 끝에 구속됐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필리핀 청부살인업자에게 돈을 주고 사업가 허모(당시 65세)씨를 살해하도록 한 혐의(살인교사)로 신모(40)씨를 구속했다고 25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신씨는 2014년 2월 10일 청부살인업자 A씨에게 30만 페소(약 750만원)을 주고 강도로 위장해 한씨를 죽여달라고 의뢰한 혐의를 받는다.
A씨가 고용한 암살자 B씨와 오토바이 운전수 C씨(이상 필리핀인)는 같은 달 18일 오후 7시 45분(현지시각) 필리핀 앙헬레스의 한 호텔 인근 도로에서 권총 6발을 쏴 일행 3명과 함께 있던 허씨를 살해했다.
조사 결과 필리핀에서 도박에 빠져 지내던 신씨는 현지 카지노에 한국인 관광객을 소개해주는 사업을 하려고 지인의 소개로 만난 한씨에게서 5억원을 빌렸으나 이 돈을 1년만에 도박으로 탕진하자 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 초기 허씨 일행으로부터 신씨가 허씨에게 거액의 빚을 진 점을 확인한 경찰은 신씨가 살인을 청부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였다. 그러나 현지 경찰이 A씨 일당을 검거하지 못하고 결정적인 증거도 나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
경찰은 국제범죄수사대 소속 경찰관이 4차례 현지 출장조사를 하고, 필리핀의 한인 사건 전담 경찰관인 '코리안데스크'가 현지 한인사회를 대상으로 지속적인 탐문을 벌이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 했다.
이 과정에서 확보한 신씨의 통역사 겸 운전기사 D씨와 총기대여업자 E(이상 필리핀인)씨의 진술이 신씨의 범행을 밝히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됐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 2명은 사건의 경과를 잘 알아 A씨 일당이 자신들을 살해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국 경찰이 현지에서 계속 수사 중이라는 얘기를 듣고 한국 영사 등을 통해 경찰에 접촉해왔다"고 전했다.
경찰은 이들로부터 신씨의 의뢰로 A씨 일당이 허씨를 살해한 사실은 물론, 앞서 두 차례에 걸쳐 살해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는 등 구체적인 범행 과정에 대한 진술을 받았다. 특히 E씨는 각 범행이 이뤄진 정확한 날짜와 A씨 일당의 사진, 이름까지 넘겨줬다.
경찰은 이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4천쪽이 넘는 수사 서류를 원점에서 재검토해 신씨가 청부살인 대가금을 전달한 시점에 원화를 페소로 환전한 내역, A씨 일당에게 보낸 허씨 사진 등 신씨를 압박할 증거를 보강했다.
앞서 9차례 조사에서 결백을 주장하던 신씨는 D씨와 E씨의 진술서, 환전내역 등 증거를 제시하자 그제야 범행을 자백했다.
살인 범죄는 정범이 아닌 교사범만 잡아서는 공소를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입장이었던 검찰은 신씨가 자백하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지 청부업자를 한국 수사기관이 검거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고, 현지 경찰이 검거해 한국으로 송환해줄 것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라면서 "해외 청부살인 사건에서 현지인 정범이 검거되지 않아도 한국인 교사범이 처벌될 수 있다는 첫 사례가 될 것"고 말했다.
이어 "D씨와 E씨는 필리핀에서 여전히 A씨 일당의 눈을 피해 도망 다니는 신세"라면서 "A씨 일당 검거를 위해 필리핀 수사당국에 공조수사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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