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비평 창간 30주년 "역사학의 위기는 실증적 매너리즘"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계간 학술지 '역사비평'이 이번 가을호(120호)로 창간 30주년을 맞았다.
이번 호에서는 서른 살 생일을 자축하면서 여말선초의 시대적 성격과 왕조 교체의 역사적 의미에 대한 재해석을 특집으로 실었다.
고려와 조선의 왕조 교체를 중세와 근세의 분기점으로 보는 국내 주류 시각에서 벗어나, 고려 후기로부터 조선 전기까지 시대를 연속성의 관점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대안적 시각을 제시한다.
최근 미국, 유럽 등 세계 곳곳에서 표출되는 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을 진단하는 특집과 오늘날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기본소득'에 대한 기획도 마련했다.
1987년 민주화 항쟁과 함께 탄생한 역사비평은 기존 학계가 사회진보에 기여하지 못하고 오히려 진보를 가로막아 왔다는 반성에서 출발했다.
고(故) 박현채 전 조선대 교수를 비롯해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고 방기중 연세대 교수, 재야 역사학자 이이화 등이 필진으로 참여하면서 근·현대사 중심으로 한 진보적 역사 연구의 물꼬를 텄다.
역사와 문학, 인문학과 사회과학, 한국사와 세계사 간의 학제간 통섭적 연구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아울러 현실의 모순에 무관심했던 기존 학계를 비판하고 사회적 현안들에 역사적 해석과 해법을 제시함으로써 우리 사회 진보 담론의 한 축을 형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역사비평 편집주간인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세계적 차원에서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듯이 역사학 역시 위기에 봉착해 있다"면서 "역사학의 위기는 민주화가 되어도, 경제위기가 와도, 촛불 항쟁이 성공해도 단절되지 않고 있는 역사학계의 매너리즘, 즉 실증적으로만 만족시키면 된다는 생각과 태도로부터 온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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