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계란' 검사 기준 만들어놓고 13년간 손 놨다
정부 2004년 비펜트린 계란 잔류 허용 기준 마련…실제 검사는 올해 처음
작년까지 농약 빼고 항생제만 검사…피프로닐 기준은 아직도 마련 안 돼
(전국종합=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 '살충제 계란'에 함유된 농약 성분인 비펜트린의 잔류 허용 기준이 마련된 때는 13년 전인 2004년 3월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당시 '식품의 기준 및 규격' 고시에 비펜트린의 계란 잔류 허용기준을 0.01㎎/㎏으로 명시했다. 과다 노출 때는 두통이나 구토, 복통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13년이나 지난 올해 8월 '살충제 계란' 파문으로 나라 전체가 떠들썩하다.
정부가 지난 15∼18일 전국의 산란계 농장 1천239곳을 전수 조사한 결과 49개 농장에서 생산된 계란에서 농약 성분이 기준치를 초과했다.
유럽에서 시작된 '살충제 달걀' 파문이 우리나라에서도 일파만파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계란에서 검출된 농약 성분은 피프로닐, 비펜트린, 플루페녹수론, 피리다벤, 에톡사졸 등 5개나 된다.
모두 살충제 용도로 사용되는 성분인데, 과다 노출 때는 두통에서부터 청각반응 저하 등 걱정스러운 증상이 생길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가 제정한 고시에 '계란 잔류 허용 기준'이 규정된 것은 이들 5개 농약 성분 가운데 비펜트린이 유일하다.
나머지 4개 농약 성분에 대해서는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보건기구(WHO)가 설립한 국제규격식품위원회(CODEX·이하 코덱스)의 잔류 허용기준을 준용하고 있을 뿐이다.
유일하게 마련된 비펜트린의 잔류 허용 기준조차 무용지물이었다.
정부는 2004년 3월 2일 비펜트린의 계란 잔류 허용 기준을 0.01㎎/㎏으로 정했지만 작년까지 13년간 산란계 농장을 대상으로 비펜트린에 대한 잔류 성분 검사에 나선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경기도 관계자는 "계란 잔류 물질 검사 때 농약 성분도 조사하라는 내용이 올해 초 농식품부가 보내온 공문에 처음 담겼다"며 "작년까지는 항생제 중심으로 검사가 이뤄졌다"고 털어놨다.
충북도와 충남도 관계자의 답변도 이와 비슷했다.
농식품부가 지난 1월 각 시·도에 보낸 '식용란 잔류 물질 검사 계획'의 검사 대상에는 작년까지 포함되지 않았던 농약 19개 항목이 추가됐다.
지난해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살충제 계란'의 문제점을 지적받은 이후다.
이마저도 전수 조사 때 검출된 5개 농약 성분 중 피프로닐과 비펜트린에 대한 조사 요구만 담겨 있을 뿐 플루페녹수론, 피리다벤, 에톡사졸 등 나머지 3개 항목에 대한 언급은 빠져 있다.
충북도 관계자는 "농식품부는 작년까지 항생물질과 합성항균제에 대한 계란 잔류 물질 검사만 지시했을 뿐 농약 항목에 대해서는 언급한 적이 전혀 없다"며 "진작에 올바른 메뉴얼을 마련, 시달했다면 살충제 계란 사태를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문제가 된 살충제 성분인 피프로닐의 계란 잔류 허용 기준에 대해서는 지금도 정부의 고시 내용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계란에 대한 피프로닐의 잔류 허용기준이 국내에는 없어 코덱스의 기준을 준용하라는 게 내부 방침"이라고 해명했다.
코덱스의 피프로닐 계란 잔류 허용기준은 0.02㎎/㎏인데 이 기준은 2003년 만들어진 것이다. 이 기준을 따른다고는 하지만 농식품부가 계란의 잔류물질 검사를 하면서 지난 14년간 피프로닐 성분을 조사한 적은 한 차례도 없다.
이번 전수조사 때 검출된 에톡사졸, 피리다벤, 플루페녹수론의 경우 식품의약품안전처 고시에는 과일·야채의 잔류 허용 기준만 담겨 있다. 계란의 잔류 허용 기준은 찾아볼 수 없다.
코덱스 역시 계란에 한해서는 3개 농약 성분의 허용 기준을 정하지 않고 있다. 산란용 닭에 절대 써서는 안 될 농약 성분으로 본 것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계란에 함유된 일부 농약 성분의 잔류 허용 기준이 있는데도 그동안 왜 검사에 나서지 않았던 것인지는 확인이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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