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때 '눈맞춤' 피하는 사회불안장애…"혹시 나도"
서울대병원, 환자·건강인 대상 가상현실 시험 결과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불안장애'는 비정상적이고 병적인 불안과 공포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은 정신질환을 통칭한다.
보건복지부의 '2016년도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인의 불안장애 평생 유병률은 9.3%였다. 국민 중 9.3%가 평생에 한 번 이상은 불안장애를 겪을 정도로 질환이 보편화했다는 얘기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이런 증상이 있어도 자신이 불안장애인지조차 모른 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하지만 불안장애가 장기화해 더 큰 정신질환이나 사회적인 문제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조기에 증상을 알아채고 치료받는 게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런 가운데 불안장애의 한 유형인 사회불안장애(사회공포증) 환자들이 자신의 부정적 평가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 때문에 말하는 중에도 상대방을 잘 쳐다보지 못하는 특징을 보여주는 가상현실 시험 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최수희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팀은 79명의 사회불안장애 환자와 건강한 성인 51명을 대상으로 실제처럼 꾸며진 여러 유형의 '아바타' 청중 앞에서 미리 주어진 내용을 발표하는 가상현실 시험을 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1일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정신건강 분야 국제학술지(Australian & New Zealand Journal of Psychiatry) 최근호에 발표됐다.
연구팀은 모든 참여자에게 두 가지 발표 조건을 부여했다.
첫 번째는 자신과 관련된 내용을 즉석에서 발표하고, 두 번째는 미리 숙지한 사회적 이슈와 관련된 내용을 발표하는 것이었다. 가상현실 속의 아바타 청중은 실제 청중처럼 얘기에 집중하는 사람, 딴청 피우는 사람, 하품하며 관심 없는 사람 등의 특성을 부여했다.
이후 연구팀은 각 발표자가 머리에 쓴 디스플레이(Head Mounted Display, HMD)의 '아이 트랙커'(eye tracker)를 통해 발표 때 시선의 움직임을 비교 관찰했다.
그 결과 사회불안장애 환자군은 정상 대조군보다 발표 중 아바타 청중을 덜 쳐다보는 경향이 뚜렷했다.
정상 대조군의 경우 자신과 관련된 발표 시 사회적 이슈 관련 내용보다 아바타 청중을 더 많이 보는 차이가 있었지만, 사회불안장애 환자군은 두 주제 모두 청중을 보는 시선에 양적인 차이가 없었다.
특히 사회불안장애 환자들은 자신에 대해 발표할 때 상대방의 부정적인 평가에 예민할수록 아바타 청중을 회피하는 경향이 더 심했다. 또 사회적 이슈를 발표할 때도 전반적인 불안 정도가 심할수록 시선을 회피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연구팀은 이번 가상현실 시험이 대화와 같은 사회적 상황에서 상대방과 눈을 잘 마주치려 하지 않고, 발표하는 동안에도 청중이 없는 곳을 더 많이 쳐다보는 불안장애환자들의 특징을 확인한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최수희 교수는 "사회불안장애 환자들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할 때 얼굴이 붉어지거나, 떨거나, 땀을 흘리거나, 말을 더듬거리거나, 모욕당하거나, 거부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이게 결국 불안감을 일으킨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당장 이런 불안감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실제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알 수 없고, 걱정과 달리 내게 호감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을 알 기회를 스스로 박탈함으로써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는 악순환을 유발한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사회불안장애 질환은 유발 원인이 다양하고, 대부분은 예방도 어려운 만큼 환자들이 갖는 이런 특징을 세밀히 관찰하고, 조기에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최선"이라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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