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는 왜 내분비 교란물질 정의를 둘러싸고 격론 계속하나
(서울=연합뉴스) 최병국 기자 = 난소, 고환, 부신, 갑상샘, 뇌하수체 등 인체 안의 여러 곳에서 각종 호르몬이 생산(분비)된다.
이 호르몬들은 에너지 대사, 생식, 성장, 발달, 스트레스나 부상에 대한 반응 등 인체 중요 기능에 관여하고 조절한다.
이런 내분비 호르몬 체제에 이상이 생기면 비만, 암, 불임, 기형아 출산 등 각종 질병이 일어나고 이는 태아나 후대의 건강과 정상적 발달에도 영향을 준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이런 인체 호르몬 체제의 기능을 어지럽혀 건강과 생식 등에 해를 주는 물질이 내분비 교란 물질이다.
현대 사회에선 살충제뿐만 아니라 각종 일상용품 속에 온갖 화학물질들이 들어가고 이 가운데 상당수가 내분비 교란 물질(일명 환경 호르몬)이라는 연구결과가 무수히 나오고 관련 규제가 강화돼 왔다.
그러나 여전히 교란 물질 여부, 어느 정도 노출돼야 인체에 유해한지, 독성이 얼마나 강한지, 규제 기준과 방법 등을 둘러싸고 학계와 업계 등의 의견이 분분한 분야가 많고 법적·행정적 규제 실행에 어려움이 있다.
EU가 내분비 교란 물질에 관한 정의와 그 기준을 정하려는 것은 관련 규제를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면서도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시행하기에 앞서 기본적 토대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문제는 내분비 교란물질을 무엇으로 규정하느냐, 즉 정의를 둘러싼 생각이 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그에 따른 이해관계도 엇갈린다.
프랑스와 스웨덴 등은 물질의 '효력'(potency), 즉 '해당 물질이 인간 생체에 영향을 주는 데 필요한 양'을 고려하지 않고 물질의 '내재적 성질'에 기반해서 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런 정의에 바탕해 각 물질이 호르몬 체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과학계가 합의한 확신성의 수준에 따라 ▲'입증된'(verified) ▲(확실한 증거는 미흡하지만 사실로) 추정되는'(presumed) ▲의심되는(suspected)의 3종류로 구분해 규제 강도와 방법을 달리하자는 것이다.
인체에 미치는 위험도 등 구체적 내용이 과학적으로 확립되기까지 오래 걸리고 때론 너무 뒤늦게 확정되는 등의 현실을 고려한 것이다.
반면에 독일은 이에 반대하면서 인간에 미치는 실질적 위험을 평가하기 위해선 '유해성'과 '노출도'를 함께 고려하고 '효력'도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살충제업체를 비롯한 산업계도 독성학의 기본원칙 중 하나가 '효력'이라면서 만약 이를 반영하지 않으면 카페인과 콩 단백질 같은 일상의 모든 식품과 음료 속 안전한 물질들조차 내분비 교란 물질로 규정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와 녹색당 측은 "그런 정의에 따르면, 내분비 교란 물질 규정이 매우 어려워지며 시장에서 퇴출될 제품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반박한다.
한편, 집권 시절 강력 규제를 지지했던 프랑스 사회당은 이번에 프랑스 정부가 입장을 바꾸자 "유해 물질들을 정의하는 일에서 시민과 소비자에게 매우 높은 입증 책임의 짐을 지우는 것이어서 용인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사회당은 환경운동가 출신 니콜라 윌로가 친기업적 우파정권인 에마뉘엘 마크롱 신임 대통령 정부의 환경장관이 된 뒤 입장을 바꿨다며 맹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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