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과학기술 뒤에는 군사력 강화를 추진한 국가가 있었다"
도쿄대 전공투 운동 이끈 야마모토 요시타카 '나의 1960년대' 출간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일본의 재야 물리학자 야마모토 요시타카(山本義隆.76)는 1960년대 도쿄대 전학공투회의(全學共鬪會議ㆍ전공투) 의장으로 학생 운동에 앞장섰던 인물이었다. 유망한 물리학도였던 그는 베트남전 반대 운동과 학내 민주화 투쟁 등의 와중에서도 공부를 놓지 않다가 1969년 박사과정 중 학교를 떠났다.
이후 그는 현실 정치에도 참여하지 않았고 대학에 돌아가지도 않았다. 언론에 등장하지도 않은 채 조용히 입시학원 강사로 생계를 유지하며 과학사 관련 저술과 전공투 운동 관련 자료집 편찬 등을 해왔다. 우리나라에도 그의 책 중 '16세기 과학문명', '과학의 탄생', '우리도 반드시 알아야 할 후쿠시마 일본 핵발전의 진실' 등이 번역돼 있다.
신간 '나의 1960년대'(돌베개 펴냄)는 야마모토가 1960년 도쿄대에 입학해 1969년 학교를 떠나기까지 10년간 있었던 일들을 회고하는 책이다. 도쿄대 전공투 운동의 핵심인물이었던 그는 당시 있었던 일들을 증언하면서 극좌학생운동 정도로 알려진 전공투 운동의 의미를 다시 살핀다.
도쿄대 전공투 운동에서 주목할 점은 정치 투쟁을 넘어 도쿄대의 학문이나 연구 자체의 문제성을 제기하는 차원으로 발전해갔다는 점이다. 이런 태도는 일본이 처음부터 국가 주도로 과학기술을 수입·추진해 왔고 그 핵심에 도쿄대가 있었던 데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다.
과학사를 연구해 온 저자는 책에서 도쿄대를 중심으로 근대 일본 과학기술의 발전 이면에 순수한 과학연구가 아닌, 국가의 의도가 있었음을 드러낸다.
도쿄대의 전신인 제국대학은 연구도, 교육도 국가의 수요에 응하도록 규정된 대학이었다. 제국대학 이학부와 공학부는 국책 과학기술을 수입하고 교육하는 곳으로 존재했다. 책은 일본이 자랑하는 신칸센과 전자기술, 조선기술이 태평양 전쟁 당시 기술교육의 산물이라는 점, 일본의 1960년대 이공계 붐은 전후에 이어진 '총력전 체제'의 연장선 위에 있었다는 점 등을 통해 일본의 과학기술 연구가 국가의 주도로 군사력 강화를 기본 목적으로 이뤄져 왔음을 보여준다.
전공투 운동 당시 '도쿄 제국주의 대학 해체' 구호가 등장했던 것 역시 전시에 군사적 목적에 복무했던 도쿄대의 태도가 별다른 반성 없이 전후에도 이어져 온 것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랫동안 재야에 은둔하던 저자가 책을 쓰게 된 계기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였다. 원전사고는 전쟁 패배에도 반성 없이 과학기술의 진보를 절대적인 선으로 여겨온 일본의 이데올로기가 낳은 산물이라는 관점에서다.
임경화 옮김. 428쪽.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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