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살인' 계기로 범죄 원인규명 중요성 인식해야"
이기수 경찰대 교수 논문…"수사 초반부터 전문인력 참여 필요"
"국내서도 혐오범죄 우려 커져…개념정의 등 대책 필요"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작년 5월 발생한 서울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을 계기로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범죄자 검거와 증거 수집뿐 아니라 범죄 원인 규명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2일 경찰에 따르면 이기수 경찰대 경찰학과 교수는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가 발간하는 '치안정책연구' 최근호에 실은 ''강남역 살인' 사건의 여성혐오 논란과 수사상 시사점' 논문에서 향후 경찰 수사에 이같은 과제를 제시했다.
강남역 살인사건은 작년 5월17일 새벽 강남역 인근 한 주점 건물 남녀공용화장실에서 김모(35)씨가 일면식도 없는 A(23·여)씨를 흉기로 마구 찔러 살해한 사건이다. 김씨는 지난 4월 징역 30년형이 확정됐다.
수사 초반 김씨는 범행 동기에 대해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 그랬다" 등 여성에 대한 적대감을 나타내는 진술을 했다. 경찰이 이같은 진술을 공개하자 이 사건을 둘러싸고 '여성 혐오' 논란이 일었다.
경찰의 최종 수사 결과에서는 정신분열증에 따른 '묻지마 범죄'로 밝혀졌으나 여성 혐오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았고, 오랜 기간 피해자에 대한 추모가 이어지는 등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 교수는 "기존 수사 관행으로는 범죄가 발생하면 수사기관의 1차 임무는 범죄자를 검거하고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었고, 그것으로 역할을 다한 것으로 인식됐다"며 "범죄자의 복잡한 심리 등은 전문가의 영역으로 분류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근 들어 범죄자와 피해자 간 상관관계가 없고, 범죄 동기가 불명확한 사건이 전보다 빈번히 발생한다"며 "이런 사건은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민에게 범죄의 공포감을 극대화한다"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원인이 불명확하거나 사회적 파장이 큰 이상범죄, 정신질환자 범죄, 혐오 범죄, 흉악범죄 등에는 프로파일러(범죄분석요원) 등 전문인력이 수사 초반부터 참여해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를 위해 프로파일러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 원인 분석 관련 전문교육 상시화, 의료계·학계와 협조체제 구축 등이 필요하다고 이 교수는 강조했다.
아울러 한국도 다문화가정 구성원이나 성소수자 등을 상대로 한 혐오 범죄 우려가 날로 커지는 만큼 경찰이 혐오 범죄의 개념을 명확히 정의해 범죄 유형에 공식적으로 포함하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이 교수는 지적했다.
이 교수는 강남역 사건에서 수사 초반 피의자 진술이 언론에 그대로 노출돼 부정확한 사실을 기초로 논란이 발생했다면서도, 발 빠르게 심리면담을 진행하고 전문가인 프로파일러에게 브리핑을 맡긴 점 등은 긍정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미국, 독일 등 혐오 범죄의 개념과 유형을 공식화한 국가에서도 정신질환에 따른 범죄를 혐오 범죄로 분류하지 않는다면서, 경찰이 이번 사건을 '정신질환에 따른 이상범죄'로 본 것은 부적절한 판단이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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