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만의 청와대 앞길 산책…북악산 여름밤 즐긴 연인·가족
청와대 앞길 첫 개방에 시민 나들이…금속노조 비닐 천막에 한때 실랑이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 시민들과 함께 산책
(서울=연합뉴스) 사건팀 = "역사적인 현장 보고 싶어 왔어요" "자유롭게 열린 이 길처럼 아이들에게도 민주주의가 활짝 열렸으면 좋겠네요."
반가운 비에 더위가 한풀 꺾인 26일. 50년 만에 청와대 앞길이 개방된 이날 저녁 남녀노소 많은 시민이 모여 들여 선선한 여름밤 공기를 마시며 산책을 즐겼다.
춘추관과 청와대 정문 앞 분수대 광장을 동서로 잇는 청와대 앞길은 1968년 '김신조 사건' 이후 막혔다. 김영삼 정부 들어 낮 시간대 통행은 허용됐으나 야간에는 육중한 철문이 통행을 가로막았다.
전날까지 오후 8시가 되면 닫혔던 이 철문은 이날부터 계속 열려있게 됐다. 청와대는 청와대 앞길을 24시간 개방하기로 했다.
야간 개방 소식에 이날 오후 일찌감치 청와대 앞길에 나와 기다리고 있던 시민들은 오후 8시 철문이 마침내 열리자 "대한민국의 마지막 문이 열렸다"며 환호했다. 간간이 내린 비도 시민들의 발걸음을 돌리지는 못했다.
청와대 뒤 어둑어둑한 하늘을 배경으로 솟은 북악산을 배경으로 휴대전화로 연방 사진을 찍는 모습도 보였다.
연인과 함께 이곳을 찾은 대학생 유승민(24)씨는 "예전에는 허용되지 않았던 청와대 배경 기념사진을 찍어 기분이 좋다"면서 "권위적인 이미지였던 청와대가 이번 개방을 계기로 친숙하고 다가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뇌병변 1급 장애인인 최창현(52)씨는 "역사적 현장을 보고 싶어 오늘 대구에서 버스를 타고 왔다"면서 "그동안 국민과 떨어져 있던 청와대가 드디어 국민 곁으로 왔다"고 말했다.
20대 딸과 함께 청와대 앞길을 걷던 이우식(53)씨는 "국정농단 사태로 압수수색 대상이 됐던 청와대가 이번 개방으로 시민들과 함께 상처를 치유하길 바란다"며 활짝 웃었다.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도 이날 오후 8시 유홍준 광화문 대통령 총괄위원장(전 문화재청장)의 안내로 주영훈 경호실장 및 시민 50명과 청와대 춘추관 앞 도로에서 분수대 방면으로 산책에 나섰다. 가벼운 옷차림의 김 여사는 철문이 열리자 시민들과 함께 박수를 친 후 산책하면서 시민들과 셀카를 찍기도 했다.
이날 개방에 맞춰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는 1인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금속노조 '노동자 민중 생존권 쟁취를 위한 투쟁사업장 공동투쟁위원회(공투위)'는 이곳에 비닐로 천막을 치고 농성 중이었다.
일부 시민은 "오늘 꼭 저렇게 해야 하느냐"라며 이들을 향해 눈을 흘기기도 했다. 박모(68·여)씨는 "길이 열려서 좋다"면서도 "저 옆쪽(공투위 농성장)에 시끄러운 소리만 안 났으면 좋겠다. 짜증이 난다"고 말했다.
반면, 박창일(61)씨는 "저 사람들 입장에서는 정당하게 시위하는 것"이라면서 "이왕 청와대가 개방한 김에 더 가까이에서 노동자의 요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공투위가 친 천막이 통행에 불편을 초래한다며 비닐을 빼앗으려는 경찰과 이를 막으려는 노조원들 사이에 수차례 거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오전 청와대 주변 5개 검문소에 설치됐던 차단막은 사라졌고, 차량 서행을 유도하는 교통 안내초소가 설치됐다.
경찰은 이날부터 청와대 주변 검문소에서 평시 검문을 없애고, 필요한 경우에만 선별적으로 검문하기로 했다.
실제로 이날 차량과 사람에 대해 검문이 이뤄지는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민주노총 조끼를 입은 두 사람이 청운효자동주민센터에서 분수대 방향으로 가려 하자 경비 경찰이 "이렇게 가면 1인시위가 아니라 집회에 해당한다"며 막았을 뿐이다. 이들 중 한 명은 결국 다른 길로 돌아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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