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세월호 아픔 위로한 광화문 천막목사
양민철 목사 "평범한 작은교회가 움직여야 세상 바뀌죠"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곳이 바로 교회이지, 건물이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가 건물에 갇혀있어서는 안 됩니다."
광화문 광장에 천막카페를 세워 지난 3년간 세월호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들을 위로해온 양민철(54) 목사는 18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광장을 지켜온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천막카페는 2014년 8월 처음 문을 열었다. 폭염주의보 속에서 땀과 눈물을 흘리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외치던 사람들은 냉커피 한 잔에 잠시나마 상처를 달랬다. 그러나 운영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수시로 보수단체가 훼방을 놓고 주먹을 휘둘렀어요. 그러나 대항할 수 없었습니다. 그랬다간 정부에서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 자체를 없애버릴 것 같았어요."
그렇게 버틴 3년. 올해 봄 미수습자 일부를 찾았다는 뉴스 속보가 휴대전화를 울렸다.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끝내 '미수습자 가족'으로 남을 이들의 얼굴이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그는 "망망대해에서 아홉 분 중 다섯 분은 아직 수습이 안 됐잖아요. 마지막까지 수습 노력을 하고, 혹시 찾지 못했을 때 어떻게 위로할지 다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분들은 다 환자입니다. 매일 약을 한 움큼씩 먹으며 버텨요. 3년간 바다만 쳐다보며 아이들 이름을 부른 분들에게 우리 사회는 과연 치유 노력을 했습니까? 오죽하면 미수습자 가족이 아니라 유가족이 되는 게 소원인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았습니다"라고 지적했다.
양 목사는 청년 시절부터 활발한 사회참여를 한 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침례신학대 82학번인 그는 학생 시절 1987년 6월항쟁의 전면에 나서지는 못한 것이 늘 마음의 빚으로 남았다고 한다.
1994년 목사 안수를 받아 1997년 구리 희망찬교회의 터전을 닦았고, 2013년부터 서울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희생자 추모 집회'에서 시민들에게 커피를 나눈 것을 계기로 세월호 가족들 곁도 지키게 됐다.
양 목사는 자신이 개신교 내 보수로 분류되는 복음주의 교회에 속하면서도 천막카페를 운영한 것에 대해 "진영과 관계없이 현장의 아픔에 맞는 봉사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사회참여는 꼭 진보세력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더 많은 평범한 교회들이 움직일 때 한국 사회가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복음주의 대형교회들이 사회와 담을 쌓는 것이 진정한 기독교 신앙인양 말하는 건 분명 잘못됐다. 중세 가톨릭이 바티칸 안에 제국을 쌓은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반문했다.
이어 "기도와 성경연구는 '방법'이지 '목적'이 아니다. 사회 문제에 눈 감으면서 대체 어디 쓰려고 성경을 배우는 것이냐"며 "본래 성경적 가치는 우는 자들과 함께 울고 그들 편에 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작은 교회'의 중요성도 역설했다.
양 목사는 "교회가 대형화됐을 때 목회자가 누리는 혜택은 제왕적 수준이고, 목회자가 한번 그런 기득권을 누리면 사익추구에서 자유로워지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교회는 기업 경영논리처럼 움직여선 안 된다. 교인들 간 유기적 소통이 가능한 규모로, 이를테면 300명 미만으로 나눠야 한다"며 "큰일이 있으면 작은 교회들이 서로 연대하면 된다"고 말했다.
양 목사는 '광화문 천막카페를 언제까지 운영할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담담히 웃었다.
"계속하면 안 되죠. 천막카페는 고난의 현장을 찾아가는 것인데, 세월호가 계속 고난의 중심이 돼선 안 됩니다. 이곳에서 우리의 역할이 필요 없어지는 순간 떠나고, 언젠가 또 다른 아픔의 현장을 찾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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