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비 인하 논란] 전문가들 "경쟁 확대 통한 요금인하 유도가 해답"
"정부 개입은 시장원리 안 맞아…미래 투자 고려하면 인하 여력도 부족
"통신업계 과점 체제가 문제…알뜰폰 등 경쟁자 육성 필요"
(서울=연합뉴스) 고현실 채새롬 기자 = 정부의 이동통신 기본료 폐지 움직임에 통신업계가 반발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인위적인 시장 개입보다는 경쟁 확대가 바람직하다는 조언을 내놓았다.
정부 주도로 통신비를 일괄적으로 인하하는 것은 시장원리에 맞지 않고 소비자혜택 감소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대신 고착화하는 통신업계의 과점체제를 깨서 통신사의 자율적인 요금 인하 경쟁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원금 상한제 등 경쟁 제한이 현재의 통신비 논란을 불러온 만큼 해법도 경쟁 확대에서 찾아야 한다는게 여러 전문가의 견해다.
◇ "통신비 비싸지 않은 수준…인하 여력 부족"
통신사의 요금 인하 여력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외국과 비교해 현재 통신비 수준이 높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재작년 발표한 '디지털 이코노미 아웃룩 2015' 보고서에 따르면 음성·문자·데이터 사용량에 따라 5개 구간으로 나눠 매긴 국가별 요금 순위에서 한국은 전체 34개국 중 8∼19위를 차지했다. 동일한 사용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 중위권에 해당하는 셈이다.
가계통신비 총액으로 따지면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이지만, 한국인의 데이터 사용량이 세계 최고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요금 자체가 비싸기보다는 통신 사용량이 많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병태 카이스트(KAIST) IT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같이 고속 통신망을 제공하는 나라들과 비교하면 통신단가는 제일 싼 수준"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통신비 인하는 현실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휴대전화는 더는 전화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라 PC, TV 등 수많은 전자기기를 통합한 역할을 한다"며 "통신비도 통신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영역의 효용이 합쳐진 요금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통신사의 경영 상황도 고려 대상이다.
통신사들은 2G와 3G에 한해 기본료 1만1천원을 폐지하더라도 1조원 이상의 매출이 감소해 타격이 크다고 주장한다.
통신 3사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3조7천억원, 영업이익률은 7∼8%대에 머문다. 이동통신 사업의 성장이 둔화하면서 가입자당평균매출(ARPU)은 지난해에만 3.7% 감소했다.
여기에 전체 가입자의 84%를 차지하는 4G(LTE) 요금까지 추가로 내리게 되면 5G 등 신사업 투자와 기존 망 유지 보수조차 어려워진다고 통신사들은 입을 모은다.
김연학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현 수익 구조를 보면 단기적으로 1만1천원 인하는 무리"라며 "통신사 수익에 큰 부담이 없는 범위 내에서 단계적으로 인하하고, 요금인하 재원을 주파수 경매대금 인하와 요금 체계 재설계 등을 통해 마련하는 게 그나마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제안했다.
기본료 항목이 있는 2G와 3G는 기본료 1만1천원을 없앤 뒤 망 유지보수비와 매출 감소분을 반영한 정액 요금제로 바꾸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다만 이 경우 기본료 인하 효과가 상쇄된다는 맹점이 있다.
◇ "정부 개입 안 돼…과점문제 극복위해 경쟁 살려 요금인하 유도해야"
현재 통신비 논란의 근본적 원인으로는 경쟁 제한이 지목됐다.
김연학 교수는 "요금인하를 밀어붙이는 정부도 문제지만, 과점 체제를 만들어온 정책 당국과 통신사에도 현재 통신비 논란의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통신사들이 과점 체제에서 축적한 돈으로 보조금 경쟁을 하고, 비슷비슷한 요금제로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해왔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불완전 경쟁이 지금의 상황을 만든 만큼 경쟁 활성화가 해답"이라며 "알뜰폰과 제4 이동통신 등 경쟁자를 키워 자율 경쟁을 통해 요금인하를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주환 한국정보통신산업연구원장 역시 국가가 나서 요금을 통제하는 것이 시장원리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임 원장은 "어떤 사업 영역이든 비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업체 간 경쟁을 유도하는 식으로 풀어야 하는데 국가가 비용을 통제하면 시장 불안정을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정부가 시장경제에 개입해서 억지로 가격을 내리는 것은 합당하지 않은 방식"이라며 "강제로 통신비를 내리면 기업이 손실을 줄이기 위해 마케팅 비용을 줄이고, 다른 방식으로 요금을 올려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줄어들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경쟁 활성화 방안의 하나로 알뜰폰 지원을 꼽았다. 알뜰폰을 통신사의 강력한 경쟁자로 키워 요금 경쟁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통신사에서 망을 빌려 쓰는 알뜰폰은 통신 품질은 이통 3사와 동일하지만, 요금은 40% 이상 저렴하다.
정부는 그동안 통신비 부담 경감을 위해 알뜰폰 업계를 육성해왔지만, 유통망과 홍보 부족으로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알뜰폰 업계는 지난해에만 317억원의 적자를 냈다.
알뜰폰 육성책으로는 통신사로부터 망을 빌리는 도매대가 인하와 전파 사용료 면제 연장 등이 거론된다.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요금제를 정부가 사전에 인가하는 요금인가제 폐지와 제4 이동통신 도입 등도 경쟁 활성화를 위한 방안으로 제시됐다.
김성철 교수는 "시장 요금은 1등 사업자의 요금에 수렴하는 경향이 있다"며 "지배적 사업자의 요금 규제를 없애고, 경쟁자를 늘리면 요금 경쟁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경쟁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해 통신사들이 고객에게 다양한 상품을 많이 내놔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이병태 교수는 "통신비 인하의 유일한 해법은 사람들이 자신의 소비 합리화할 수 있게 다양한 상품을 많이 제공하는 것"이라며 "통신사가 여러가지 결합 상품을 내놓고 서비스 경쟁을 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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