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조작국 지정 '칼날' 피했지만…美 통상 압박 거세질 듯(종합)
불씨 여전해 10월 보고서 때 다시 이슈될 수도
정부 "대미 무역흑자 축소…美에 환율정책 적극 설명"
(세종=연합뉴스) 김수현 기자 = 미국 재무부가 15일(한국시간) 반기 환율보고서에서 한국의 관찰대상국 지위를 유지하면서 당장 외환 당국은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한국이 환율조작국에 지정되지 않은 것은 통상 관계에서 팽팽했던 미국과 중국 간 갈등 기류가 누그러지고 우리 외환 당국이 미국에 환율정책을 적극적으로 설명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다만 미·중 정상회담에서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기로 합의한 뒤 중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제외 결과가 나온 만큼 추후 한국에도 유사한 통상 압력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급한 불은 껐지만 10월 예정된 환율보고서에서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단할 수 없는 만큼 안심하기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 누그러진 미·중 무역전쟁…정부 적극적인 설명도 한몫
한국이 환율조작국 지정을 피한 것은 이달 초 진행된 미·중 정상회담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정상회담에서 무역수지 흑자가 통화 공급과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준다며 무역흑자를 축소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고 미국도 환영의 뜻을 밝혔다. 양국은 무역 불균형을 바로 잡기 위한 '100일 계획' 마련에 돌입했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금융업 분야에서 외국자본의 지분 비율 제한을 푸는 등 금융업 투자 제한 조치를 완화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광우병 파동 이후 금지됐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도 14년 만에 풀겠다는 제안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자국 경제 우선이라는 기치를 앞세운 미국과 이에 맞서는 중국 간의 통상 마찰 압력이 고조되던 상황에서 정상회담으로 양국이 절충점을 찾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실제 정상회담 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2일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환율조작국이 아니다"고 밝혔다.
중국을 비롯한 한국, 일본, 대만 등의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이 상당히 낮아졌다는 관측이 나온 것도 이때쯤이었다.
환율조작국 지정을 피하기 위한 우리 정부의 발 빠른 노력도 있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월 취임한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과 두 달 사이 두 차례 전화 통화와 한 차례의 양자 면담을 갖고 환율 시장에 일방적인 개입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2월에는 한국이 환율조작국이라고 주장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기재부와 한국은행이 FT 영국 본사와 일본 지사에 이례적으로 항의서한을 보내는 등 발 빠르게 움직였다.
올해 들어 대미 무역흑자를 줄이기 위한 노력에 시동을 걸기도 했다.
정부는 대미 교역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올해부터 미국산 셰일가스를 연간 280만톤(t) 규모로 도입하고 다른 원자재 교역을 늘리기로 했다. 이어 미국의 항공기, 항공기부품 도입 등의로 수입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실제 올해 1∼2월 대미 무역 흑자는 38억8천410만달러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25%나 줄었다. 지난해 2월까지 대미 무역 흑자 6위였던 한국의 순위는 9위로 낮아졌다.
◇ 통상 압력은 이어질 듯…6개월 후 환율 이슈 또 불거질 수도
그러나 아직 완전히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관찰대상국 지위는 미국이 환율 관리를 주시하면서 상황 변화에 따라 해당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이번 환율보고서 발표는 직전에 미·중 정상회담이 성사되고 양국이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한 100일 계획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하는 등의 특이 요인이 있었다.
중국의 대미 무역 흑자가 이후에도 줄어들지 않아 일시적으로 누그러진 양국 사이 긴장감이 다시 팽팽해지면 다음 환율보고서가 나오는 10월에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현재 관찰대상국 상태인 한국도 덩달아 환율조작국에 오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는 선거공약을 일시적으로 접은 것일 뿐 상대국에 강력한 통상 압박을 지속하겠다는 기조까지 변한 것은 아니라는 점도 안심할 수 없는 요소다.
실제 미국은 이번 환율보고서에서 통상 압력, 외환시장 투명성 제고 압박이 계속될 것임을 시사했다.
미국은 한국에 대해 시장 개입은 무질서한 시장 환경 등 예외적인 경우로 제한하고 외환정책의 투명성을 높이라고 권고했다.
중국에는 "과거 10년 간 위안화 절상을 막기 위한 광범위한 일방향 개입, 시장 접근성 제한 등 불공정한 무역을 통해 대외 불균형을 초래했다"며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해 시장 개방, 규제 완화 등 정책적 노력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독일에는 "세계 4위 경제대국이자 전세계에서 경상수지 흑자가 가장 큰 국가로서 수요를 진작시키고 무역 불균형을 해소할 책임이 있다"고 언급했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대표적인 대미 무역 흑자 국가인 한국 등 관찰대상국에도 중국과 비슷한 압력을 가할 것임을 추측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해 주요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보면 중국이 3천470억 달러로 가장 많았고 한국은 277억 달러로 미국 무역 상대국 중 8위였다.
무역 흑자 규모는 중국에 비해 작지만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3%를 넘는 등 환율조작국 지정 요소 중 2가지를 충족해 한 개만 해당하는 중국보다 더욱 걸리는 것이 많다.
최근 완연한 증가세를 보이는 우리 수출에는 부정적인 영향이 우려된다.
대미 무역 흑자, 경상수지 흑자를 줄여야 하고 미국의 환율 압박 때문에 외환 당국이 미세조정에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 원/달러 환율이 널뛰기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 경우 수출기업 입장에서는 불확실성이 확대될 수 있다.
전년 동월 대비 수출은 지난 3월 13.7% 증가하는 등 5개월 연속 늘어나면서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상태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기반은 중산층 제조업 근로자이기 때문에 수출 여건이 좋아야 한다"며 "경제 회복기에 들어가 금리를 인상하는 상황에서 수출도 잘 돼야 하는 딜레마를 해결하려면 결국 미국은 대미 무역 흑자 국가를 대상으로 통상 압박을 계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도 미국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앞으로도 정부 환율정책을 적극적으로 설명하겠다는 방침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관찰대상국 지정이 예견했던 결과여서 시장에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앞으로도 미국에 우리 측 외환시장 상황을 설명하고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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