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문서] 전두환정권, 외신도 통제…지국폐쇄 암시하며 협박
외무부, 전두환 유럽순방 보도 기자에 "불행한 사태 있을 수도"
미국의 대리비아 제재 관련해 "리비아 자극 말라" 보도 통제
(서울=연합뉴스) 이정진 기자 = 언론사에 기사의 가이드라인인 보도 지침을 내렸던 전두환 정권의 언론통제 행태는 외신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11일 공개된 1985년 외교문서에는 홍콩에 본사를 둔 시사주간지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Far eastern economic review·FEER)'가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유럽순방 계획을 다루자 우리 정부가 발끈한 내용이 담겨 있다.
FEER의 심재훈 서울지국장은 1985년 10월 31일 자 지면에 "전두환 대통령이 1986년 초 유럽을 방문할 계획"이라며 "서울의 유럽 외교관들은 방문의 격을 놓고 이견이 있을 것으로 예상해 우려하고 있다"는 요지의 기사를 실었다.
이 사안과 관련, 이원경 당시 외무장관이 11월 5일 주홍콩 총영사에게 보낸 전문을 보면 "외무부 구주국장은 11월 1일 심재훈 지국장을 외무부로 소환해 '경호차원에서 국가원수에 대한 보도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면서 '유사한 사건 재발시 불행한 사태가 있을 수 있다고 통보함으로써 지국 폐쇄 문제도 야기될 수 있음을 암시했다"고 적혀 있다.
그러면서 "귀관(주홍콩 총영사관)은 동지(FEER) 본사 데스크와 접촉, 한국의 입장 및 지국기자 경고 사실을 거듭 천명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주홍콩 부총영사는 11월 7일 현지에서 FEER의 편집자를 만나 항의했다.
정부 조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85년 11월 8일 서울발 AFP통신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해당 기사가 담긴 잡지의 국내 배포를 아예 금지했다.
정부가 이처럼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1983년 미얀마 아웅산 테러의 잔상이 남아있었기 때문으로 보이지만, 해당 기사에는 정확한 방문 일정이나 방문국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과도했다는 평가다.
미국으로부터 대 리비아 제재 동참 요구를 받은 전두환 정권이 리비아 문제와 관련해 국내 언론 통제를 시도하며 '보도지침'을 만든 사실도 드러났다.
1986년 1월 8일 미국의 대 리비아 경제 제재 조치가 발표된 뒤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대 리비아 보도지침'이란 제목의 문서에 의하면, 관련 외신 인용 시 축소 보도할 것, 리비아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미측의 순수 제재조치에 대한 외신 말고는 보도하지 말 것 등이 적시됐다.
또 관련 외신 논평·비평 등 보도중지, 리비아를 자극할 우려가 있는 논평·비평 등 외신은 보도하지 말 것 등도 적혔다.
뿐만 아니라 주한 리비아대사관 기능을 했던 주한리비아국민사무소 직원이 구독하는 국내 영자 일간지상에는 대리비아 제재와 관련한 외신 전재 보도를 삼가는 것이 권익(국익)에 도움될 것으로 본다는 내용도 지침에 포함됐다.
더불어 1986년 2월 2일 당시 주리비아 대사는 외교부 장관에게 보낸 전문에서 한국 언론이 리비아 상황 관련 보도를 자제하도록 만드는 대책을 마련하라고 제언했다.
대사는 "각 진출업체(리비아내 한국업체)는 우리나라 근로자 일부의 동요 현상을 지적하며 그 주요 요인은 국내 보도에 기인한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며 "주재국 동향과 분위기는 외신보도만큼 심각하지 않으므로 긴박감을 부채질하는 리비아 관계 보도마저 자제한다면 근로자 동요를 최소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이에 따른 국내언론 대책을 건의한다"고 적었다.
카다피 집권시절 미국이 테러 행위 등을 이유로 대리비아 제재에 나서면서 한국 정부는 건설공사 수주 등 기업의 이해관계 수호를 위해 미국과 리비아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했다.
85년 9월말 기준으로 한국 기업에게 사우디 다음 가는 해외 건설 시장이었던 리비아에서 우리 기업의 수주 계약액은 110억 달러였고 시공 잔액이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47억 5천만 달러 수준이었다. 진출인력은 2만 3천명에 달했다.
transi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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