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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욱의 사시사철] 이번 대선 여론조사의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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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욱의 사시사철] 이번 대선 여론조사의 운명은?

(서울=연합뉴스) 대선이 가시권에 진입했다. 일단 5월 9일이 디-데이(D-Day)로 꼽힌다. 불과 50여 일 뒤다. 대선 향배에 대한 관심은 지대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 후보에 대한 선호가 엇갈리는 데다, 당락에 따라 이해관계가 직·간접적으로 얽힐 수 있기 때문이다. 대선후보 여론조사는 이런 궁금증을 일부 풀어준다. '표심 엿보기' 심리도 작용한다. 여론조사 자체가 선거 판세를 뒤흔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유권자들은 자기가 찍은 표가 무의미해지는, 이른바 사표(死票)가 되는 것을 꺼려 한다. 우세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밴드왜건 효과'의 배경이다. 대선후보들이 여론조사에 일희일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여론지지도가 높게 나오는 후보에게는 돈과 사람이 몰린다. '지지도 상승→자금·세력 결집→지지도 추가 상승'의 선순환이 가능하다. 선거 전략도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달라진다. 가령 지지도가 낮게 나오는 후보는 승부수를 던지는 경향이 강하다. 선거 역전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노이즈 마케팅이나 무차별 폭로, 인신공격도 이에 해당한다. 역으로 높은 지지를 받을 경우 안정적 선거 관리에 주력한다. 가급적 변수를 줄이고 변화를 차단해 기존 지지세를 유지하는 전략이다.


이처럼 여론조사의 위력은 생각보다 크다. 단순한 조사 이상의 영향력을 갖고 있다. 실제로 과거 A라는 유력 대선후보를 보자. 그는 한때 대선판을 주도하면서 높은 지지도를 확보했다. 캠프는 원활하게 작동됐고, 사람과 돈도 넘쳐났다. 그러다 B라는 후보가 치고 올라오면서 A 후보지지도는 급락했다. 하루하루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지지도가 선명하게 보일 정도의 급전직하였다. 이내 돈도 사람도 떠나고, 결국 군소후보로 전락했다. 여론조사라는 롤러코스터를 극명하게 탄 케이스다. 대선후보들은 지지도 1%에도 목을 매단다. 오르면 웃고 내리면 운다. 무대에 등판하면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게 여론조사다. 이른바 지지율의 마력이라고 한다. 이번 대선도 예외일 수 없다. 각 기관에선 이미 수 많은 여론조사 결과를 쏟아냈고, 앞으로도 대선 종결 때까지 여론조사가 홍수를 이룰 것이다.



그렇다면 여론조사는 믿어도 될만한 것일까. 전문가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신뢰하기에는 허점이 많다는 것이다. 실제 사례도 허다하다. 지난해 4.13 총선만 해도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여당인 한나라당의 압승이 예측됐으나 결과는 야당의 과반 승리였다. 여론조사 기법이 선진적이라는 미국이나 영국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미국 대선, 영국 브렉시트 찬·반 투표가 대표적인 경우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 승리, 유럽연합(EU) 탈퇴 등 여론조사와는 정반대 결과가 나왔다. 양국 전문가들은 아직도 원인을 분석 중이나, 결국 응답률과 표본수의 한계 등으로 수렴되고 있다.





응답률의 경우 최소 25%는 넘어야 신뢰성이 어느 정도 담보된다는 게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견해다. 면접원이 유·무선 전화를 걸어 직접 질문하는 조사에선 응답률이 15%를 상회하는 경우가 많으나 기계음을 활용한 ARS(자동응답방식) 조사에서는 대부분 5%에도 못 미친다. 최근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등록된 여론조사 66개를 분석한 데 따르면 응답률 최저는 3.1%, 최고는 23.9%, 평균은 9.2%였다. 조사에 응하는 경우가 100명 중 10명도 안 된다는 얘기다. 4.13 총선만 해도 선거기간 공표·보도된 1천744건의 여론조사 가운데 5% 미만 응답률을 보인 조사가 38%나 됐다. 평균 응답률도 8.9%에 그쳤다. 응답률 못잖게 여론조사 기관의 부실도 심각한 수준이다. 2014년 지방선거 때 83개였던 조사 기관이 지난해 총선에선 186개로 급증했는데, 상당수는 총선 특수를 겨냥해 급조된 '떴다방 업체'들로 분석됐다. 심지어는 전화기 한 대만 둔 곳도 버젓이 행세했다. 표본 수 한계도 여론조사 오류의 원인으로 꼽힌다. 통상 모집단이 1천 명인 경우가 많으나 500명 정도의 소수를 대상으로 하는 조사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 전체 유권자가 4천100만 명이 넘는 점을 고려하면 응답표본의 비율은 0.0025%에 불과하다. 유권자 10명이면 지지율 1%는 떼놓은 당상이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지금 여론조사에 응답하는 사람들은 광적인 지지계층"이라며 "지금은 좌파 광풍 시대"라고 주장했다.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했을 법한 발언이다. '샤이 보수'의 여론조사 거부증에 대한 기대감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여론조사 기피현상은 최순실 사태와 대통령 탄핵으로 운동장이 왼쪽으로 기울고 있는 사회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다. 실제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샤이 보수의 숨겨진 표심이 10∼15% 정도 될 것으로 본다. 이런 감춰진 표의 존재 유무를 떠나 역대 선거의 여론조사에는 빈틈이 많았고, 그 결과가 이변으로 표현되곤 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여론조사 기법이나 규모가 별반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장미꽃이 만발해 있을 5월 9일의 늦은 저녁, 여론조사가 깊은 수렁에 빠져 있을지, 아니면 붉은 자태를 뽐내고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논설위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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