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철종 前주불한인회장 "독립건물 마련 노력 지속"
85세 고령에도 앞장…1999년 교사매입추진협회 만들어 모금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일제시대에 학교를 다녔는데 교실에서 한국말을 쓴다고 교단 앞에 불려 나가 무릎을 꿇고 수모를 당했어요. 동포 자녀들이 좋은 환경에서 한글과 우리 말을 계속 배웠으면 하는 마음뿐이에요."
이철종 전 주불한인회장은 올해 우리 나이로 85세의 고령이지만, 파리한글학교 전용 공간 마련을 위해 요즘에도 부지런히 파리 시내를 오간다.
그가 1999년 결성한 파리한글학교 교사매입 추진협회는 최근 파리 남동쪽 크레믈린 비세트르의 4층짜리 건물의 1층 152㎡ 공간을 한글학교 전용 공간으로 매입했다.
비록 한글학교가 임차 신세를 완전히 벗어날 만큼 넓지는 않지만, 개교 43년 만에 독립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
더욱이 정부의 도움 없이 순전히 교민들이 '십시일반' 모으고 재불 예술가들이 한국에 작품을 손수 팔면서까지 마련한 돈으로 사들인 공간이라 의미는 더 크다.
그동안의 기금마련 활동도 절대 순탄하지는 않았다.
한글학교의 '셋방 신세'를 딱하게 여긴 교민 몇몇은 1989년부터 전용공간 마련을 위해 모금을 시작했다. 마침 그해 방불한 노태우 대통령에게도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정부 지원은 불발됐다.
교민들은 기금마련차 1990년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 등의 재능기부로 자선음악회도 성황리에 열었다.
이렇게 모금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꽤 큰돈을 모았지만, 당시 파리한글학교 육성회가 기금을 방만하게 운영하는 등 일련의 사건들이 있고 나서 모금은 1년 만에 중단되고 말았다. 모은 돈도 어디론가 전부 사라져버렸다.
한국음식점을 경영하면서 주불한인회장을 지내는 등 교민사회 일을 많이 한 이 회장은 희망을 접지 않았다. 1999년 파리한글학교 교사매입 추진협회를 만들어 파리시에 공식단체로 등록하고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모금활동에 나섰다.
재불 화가 고(故) 한묵 선생과 서양화가 권순철(73) 등이 작품을 선뜻 기증했다. 권 화백은 고향인 대구의 중고교 동창들에게 한글학교 마련의 당위성을 설명하며 기금모금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교민들은 주불한국대사가 바뀔 때마다 우리 정부에도 계속 도움을 요청했지만, 예산 문제와 프랑스 파리가 비교적 교육환경이 좋은 곳이라는 이유 등으로 번번이 거절당했다고 한다.
그래도 교민들이 모은 기금은 어느덧 작은 건물을 매입할 만큼이 됐고, 지난달에는 현 파리한글학교가 주 1회 빌리는 파리 구스타브 플로베르 중학교 인근의 4층짜리 건물 중 한 층을 사들이는 데 성공했다.
고령의 이 회장이 한글학교 건물로 쓸 공간을 찾으려고 수년간 파리 시내 곳곳을 돌아다닌 끝에 이뤄낸 결실이었다.
"70년대 초에 재일교포자녀 700명이 단체로 한국을 배우겠다며 서울에 온 걸 본 적이 있는데 우리말을 제대로 하는 친구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프랑스에서 자리를 잡고 나서부터니까 프랑스 한글학교 운동에 반평생을 매달린 셈이지요."
이 회장은 "나이가 너무 들어버려서 요새는 건강도 많이 안 좋아졌다"면서 언제까지 모금활동을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도 중국이나 일본 등 다른 나라 교포들이 번듯하게 건물을 갖고 자국문화의 정수(精髓)인 언어를 후손들에게 여유 있게 가르치는 모습을 보면 여전히 피가 끓는다고 했다.
"외국에 살면서 한글을 모르면 한국인의 정체성은 사라져버리는 거에요. 내가 얼마나 더 살지 모르겠지만, 파리한글학교가 학생들을 전부 수용할 수 있는 독립건물을 마련할 때까지 모금을 계속할 겁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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