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김정남 시신, 북한에 넘긴다는데
(서울=연합뉴스) 말레이시아 정부가 자국에서 살해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의 시신을 북한 측에 인도할 뜻을 내비쳤다.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아흐마드 자히드 말레이시아 부총리는 16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정남의 시신을 인도해달라는 북한의 요청을 받았다면서 수사 절차를 밟은 후 인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의 정책은 어떤 외국 국가와의 양자 관계라도 존중해야만 한다는 것"이라면서 "모든 경찰(수사)과 의학적 절차가 마무리된 후에 (북한) 대사관을 통해 가까운 친족에게 시신을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시기를 못 박지는 않았지만 시신 인도를 강하게 시사한 것이다. 앞서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대사관 측은 김정남 시신 부검 전에 시신 인도를 요구했으나 말레이시아 당국이 거절한 바 있다.
이 사건 용의자들이 속속 체포되는 등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범행 배후를 밝혀줄 결정적인 단서는 아직 없는 상태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공항 범행 현장에서 폐쇄회로(CC)TV에 포착된 여성 용의자 2명 중 베트남 여권을 가진 여성을 전날 체포한 데 이어 이날 또 다른 여성 용의자를 붙잡았다. 이 여성은 인도네시아 여권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이 여성의 남자친구인 말레이시아 남성도 추가로 체포됐는데 이 남성이 당초 용의자로 추적하던 남성 4명 중 한 명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범행에는 독극물이 묻은 천이나 독극물 스프레이가 사용됐다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지만, 정확한 사인을 밝혀줄 부검 결과는 이번 주말께 나올 예정이다. 수사상황을 더 지켜봐야겠지만 자칫 사건이 상당 기간 미궁에 빠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말레이시아 당국이 김정남 시신을 서둘러 인도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시신 인도보다 사건 진상 규명이 우선이다. 자히드 부총리가 이날 말레이시아와 북한 관계에 이번 사건이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점이 주목된다. 말레이시아가 동남아 국가 중에서 북한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대표적인 나라이기 때문이다. 사망사건에서 시신 처리는 유족의 의사가 우선시된다. 이 사건의 경우 김정남 가족의 의사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김정남의 가족은 중국의 보호 아래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신변 위협을 느껴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힐 상황은 아닌듯하다. 더욱이 북한에는 김정남의 직계가족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말레이시아 당국이 '북한 대사관을 통해 가까운 친족에게 시신을 보낼 수 있다'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이 북한 소행일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에서 시신을 북한 측에 인도하는 것은 '살해범에게 시신을 넘기는 것과 같다'는 주장이 국제 인권단체 등에서 나올 법하다. 무작정 북한 당국에 시신을 넘겨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사건이 종결된 후에 유족에게 인도하는 것이 맞다. 우리 외교당국의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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