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전쟁] 트럼프 포문 열자 곳곳에 전운…3월 G20 재무장관회의 주목
"중국부터 독일까지" 세계 상대로 총대 겨눈 트럼프에 각국 바짝 긴장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제일주의를 외치며 전 세계를 상대로 환율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당선 전부터 맹비난해 온 중국은 물론 일본, 독일을 상대로도 통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춰 부당한 이득을 보고 있다며 비판의 날을 세웠고, 세계 각국은 이에 반발하며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환율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될지 아니면 극적으로 조율하게 될지는 지금으로선 불확실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쉽게 점칠 수 없는데다 상대가 있는 게임이어서 그렇다.
지금껏 미국의 움직임에 비춰보면 전운은 일단 짙어지는 형국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다음 달 17~18일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리는 이벤트를 주목한다. 미국은 물론 중국, 일본, 독일 등 주요 20개국(G20)의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기 때문이다.
◇ '모두가 敵' 중국·일본·유럽 상대로 맹공격…환율전쟁 전운 고조
트럼프 대통령이 환율 문제와 미국의 무역적자를 문제 삼은 것은 하루 이틀 사이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후보 시절부터 그는 중국의 통화정책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대(對)미 무역흑자를 두고 '강간'이라고 표현해왔다. 아예 취임 후 100일 과제에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것을 명시하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일본과 독일까지 거론하며 전선을 넓혔다.
지난달 31일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일본이 수년간 무슨 짓을 해왔는지 보라"며 "이들은 시장을 조작했고 우리는 얼간이처럼 이를 지켜봤다"고 말했다.
그 직전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이자 경제 고문으로 알려진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이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독일이 유로화 절하를 통해 미국을 착취한다고 주장했다.
국가 이름을 직접 거론하면서 사실상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일본과 독일은 물론 프랑스, 유럽중앙은행(ECB)의 총재까지 나서 트럼프 행정부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고 미국과 여타 국가 간의 신경전이 고조되고 있다.
이 같은 모습은 과거 2010년 미국이 중국의 위안화 절상을 압박하는 가운데 선진국과 신흥국 사이에 벌어진 환율전쟁을 상기시킨다.
당시 브라질 재무장관이 국제무대에서 '환율전쟁'이라는 표현을 동원하며 상황의 심각성을 알리기도 했다.
이번에도 미국이 중국의 통화정책을 걸고넘어진 것을 시작으로 환율전쟁이 다시 시작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1월 20일 이후로 6개 통화 대비 달러의 가치를 나타낸 달러지수는 고작 0.06% 올랐다.
블룸버그 집계 자료에 따르면 이 기간 역내시장에서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은 오히려 0.03% 상승했다.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은 1.22% 내렸으며, 달러 대비 원화의 경우에는 1.55%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운용사 핌코의 요아킴 펠스는 "새로운 '환율 냉전'에 진입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달러 강세를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 럭비공 같은 트럼프, 진짜 전쟁 벌일까?…환율조작국 지정 당겨질 수도
미국 최초의 '아웃사이더' 출신 대통령인 트럼프가 과연 환율전쟁에 뛰어들지는 미지수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까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반(反)이민 행정명령 등 각종 공약을 모두 이행하고 있다는 점이 불안한 요소다.
가장 대표적인 공약이었던 중국 환율조작국 지정 역시 지킬 가능성이 큰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중국의 '환율조작' 문제를 거론하면서 "통화 평가절하에 관해서는 내가 그동안 계속 불평을 해 왔는데 우리는 결국 아마도 공평한 운동장에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하나의 중국' 정책 존중으로 누그러뜨려 놓은 미중 관계와는 별도로 트럼프 행정부가 환율 문제에 손을 대기 시작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을 보탠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초에도 "달러 강세가 미국을 죽이고 있다"며 달러 약세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서슴지 않고 드러냈다.
미국과 일본 정상이 정상회담에서 환율 문제를 논의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제2의 플라자 합의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플라자 합의는 1985년 미국 달러화가 지나치게 강세를 보이자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재무장관이 맺은 합의다. 이 합의로 엔화는 2년간 66%, 마르크화는 57% 절상됐다.
이때 엔화 절상의 여파로 일본이 장기 경기침체를 겪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장에서 환율전쟁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다음달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리는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다.
이 회의는 트럼프 행정부가 처음으로 주요국 경제금융 수장들이 참석하는 다자 무대에 데뷔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과거 2010년 미국과 중국 간에 붙었던 환율전쟁도 한국 경주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회의에서 일차적으로 진화된 바 있다.
그 다음으로는 미국 재무부가 환율보고서를 발표하는 4월이 고비가 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이 보고서를 통해 환율조작국 지정 여부를 밝힌다.
다만, 환율보고서 발표 시기가 당겨지며 곧 환율전쟁의 막이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 정상회담에서 '공평한 운동장'을 언급하며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그렇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 점은 이런 관측에 무게를 실어준다.
도이체방크는 지난 7일 보고서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수주일 내에'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만약 중국이 대미 무역흑자를 줄이는 미국과의 협상에 응하지 않는다면 중국산 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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