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아인 상대 280억원 투자사기…어떻게 대출이 가능했나
(창원=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경찰이 이번에 적발한 농아인 투자 사기단 '행복팀'은 전국에 있는 농아인 500여명으로부터 확인된 금액만 280억원을 뜯어냈다.
피해 농아인들은 대부분 생활이 어려워 빚을 내지 않고는 돈을 마련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거의 모두 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행복팀에 바쳤다.
피해 농아인들이 행복팀에게 뺏긴 돈은 200만~300만원에서 많게는 5억~7억원에 이르렀다.
피해자들은 청각·언어장애를 갖고 있어 대부분 일정한 직업이 없거나 공장에서 최저임금보다 조금 높은 임금을 받고 공장에서 일했다.
이들은 금융거래 실적이 별로 없고 자산이 많지 않아 조건이 까다로운 시중은행 대출 문턱을 넘기가 어려웠다.
행복팀은 그래서 대출조건이 덜 까다로운 제2금융권을 골랐다.
대출이나 할부금융을 주로 하는 캐피탈사나 대부업체를 통해 주로 돈을 빌리게 하는 방법을 썼다.
경찰에 따르면 행복팀은 일단 집이나 자동차 등 담보를 잡힐만한 자산이 있고 금융기관에 대출잔액이 없는 농아인들만 골랐다.
이어 "3개월만에 투자금 3~5배를 돌려주겠다"며 집요하게 투자를 권유했다.
행복팀은 상대방 입술 움직임이나 얼굴 표정을 보고 상대방 말을 이해하는 구화(口話) 능력자나 청각장애가 심하지 않아 일반인과 대화가 가능한 농아인을 팀장으로 활용했다.
이 팀장들이 피해 농아인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자신들이 캐피탈사나 대부업체 직원들과 대출거래를 주도했다.
경찰은 피해 농아인들은 자신들 이름으로 대출을 받는데도 대출 조건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회사가 내민 대출 서류에 서명을 한 것으로 파악했다.
피해 농아인들이 집이나 자동차 등을 담보로 잡혔기 때문에 신원 확인 후 서명만 하면 담보 한도내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한 농아인 부부는 이런 방식으로 부모님이 물려준 집을 담보로 2억3천만원을, 주부대출로 2천만원을 빌려 총 2억5천만원을 행복팀에게 뜯겼다.
부부는 구두공장, 의류 공장에서 맞벌이로 매달 200만원 남짓을 벌어 120만원 가량을 대출금을 갚는데 쓸 정도로 생활이 피폐해졌다.
전화로 소액대출을 취급하는 대부업체에는 신원확인을 위해 걸려온 전화를 행복팀 팀장이 대신 받아 대출을 받는 당사자인 척 했다.
김대규 창원중부경찰서 수사과장은 "피해 농아인들은 금융지식이 별로 없었다"며 "일반인들도 꼼꼼히 살피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길고 복잡한 대출약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서명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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