Ƈ천원의 꿀잼'…인형뽑기에 열광하는 청춘 는다
지친 삶에서 작은 '도박'으로 얻는 대리만족에 매료
인형뽑기방 급증·SNS 관심 커져
(서울=연합뉴스) 오수진 기자 = 6년차 직장인 박모(30·여)씨에겐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취미 생활이 없다.
평일엔 깜깜한 새벽에 출근해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퇴근하면 집에 들어와 씻고 자기 바쁘다. 그나마 주말이 되면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보고 싶지만 새로운 일에 도전할 여유도 의지도 잘 생기지 않는다.
그런 그에게 인형뽑기라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밝은 조명 아래 오밀조밀 누워있는 인형 중 하나를 고를 때의 '설레임'. 조이스틱을 움직여 집게발을 내릴 때 느끼는 짜릿한 '손 맛'. 1천원을 넣으면 2번의 '득템' 기회를 주는 인형뽑기방에서 순식간에 1만원을 쓰는 일도 다반사다.
박 씨는 "사실 인형 뽑기는 어릴 때 추억이 생각나 시작했는데 요즘엔 자꾸 욕심이 생긴다"며 "로또처럼 어마어마한 행운은 나에게 올 가능성도 없을 것 같지만, 인형뽑기는 나에게 작은 행운을 안겨다 주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몇 년간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던 인형뽑기 열풍이 거세다.
게임물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5월 33개에 불과하던 인형뽑기방은 8월 147개, 11월 500개로 폭증했다.
인형뽑기방이 '적은 투자금, 무인관리'라는 불황 사업의 특성과 맞아떨어진다지만 이것만으로 인형뽑기의 흥행요인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 소소한 쾌감에 전리품은 '덤'…인형뽑기 관심 급증
인형뽑기에 대한 젊은층의 관심은 사회관계서비스망(SNS)에서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다.
11일 빅데이터 기반 인공지능 전문기업 다음소프트에 따르면 블로그 4억4천건, 트위터 74억건, 인스타그램 17만건을 분석한 결과 2014년 1만8천118건에 불과했던 인형뽑기 언급횟수는 2016년 15만8천961건으로 10배 가까이 급증했다.
지난 1일부터 8일까지 약 1주일간 SNS상에서 언급된 인형뽑기 단어 횟수만 해도 1만4천948건에 이른다.
SNS상에서는 인형뽑기와 '귀여움'이 함께 언급된 경우가 1만843건으로 가장 많았다. 재미(6천289건), 성취감(6천500건), 인증욕구(2천572건)도 관련 단어로 많이 등장했다.
인형 뽑기 유행 요인은 트위터 원문의 리트윗 횟수로도 유추해볼 수 있다.
실제로 "이제는 편의점 도시락이나 핫도그 전문점, 인형뽑기방이 유행한다. (중략). 몇천원으로 단순한 재미를 즐길 수 있는 가난한 여가다"라는 트위터는 리트윗 횟수가 3천건이 넘었다.
"요즘 대학생이 진짜 돈이 많고 여유롭고 자기 취향의 여가를 찾는 삶을 살았다면 천원짜리 인형뽑기방에서 가짜 포켓몬 뽑는 게 아니라 정품 인형을 사모으거나 보드, 스키를 타거나 악기를 하고 그랬겠지요"라는 트위터도 4천건이 넘는 리트윗 횟수를 기록했다.
◇ '헬조선'에서 작은 '도박'으로 얻는 씁쓸한 성취감
장기 불황을 겪었던 일본에서 인형뽑기방이 성행하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나라에서 인형뽑기방이 유행하는 이유도 일본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다는 '헬조선' 문화가 만연해진 가운데 작은 요행으로 얻는 인형이 '삶의 만족감'을 대리 충족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전문가들은 입시 경쟁, 취업 전쟁에 지친 젊은이들이 작은 성취감을 느끼는 통로로 인형뽑기를 선택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가난한 젊은층이 여가 선택조차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따지지 시작한 문화도 한몫했다.
다음소프트는 "인형뽑기가 단순한 게임으로 보이지만 인형을 뽑는데서 오는 성취감이 의외로 크다"며 "지난해 인형 뽑기와 한 문장에 처음으로 언급되기 시작한 '가난하다'라는 단어가 9천783회나 나온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이나영 교수는 "금전적인 여유나 여가를 즐길 시간이 많은 사람이 인형 뽑기를 취미 생활로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오락과 도박도 큰 성과, 엄청난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적은 비용으로 가장 큰 기쁨을 찾을 수 있는 대상을 찾게 된다"며 "소소하게 일상의 분노와 불만의 표출하는 통로로 인형뽑기가 유행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sujin5@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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