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무기를 공급하고 있는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진정한 승자'가 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왔다.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서방의 부품을 들여와 신속하게 미사일을 생산·전달하는 역량을 과시했다는 것이다.
영국 BBC방송은 5일(현지시간) 최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공격에 사용한 북한제 미사일을 분석한 결과 북한이 제재를 피해 미국·유럽산 부품을 불법 조달하고 몇개월 만에 미사일을 만들어 러시아 최전선에 보내고 있음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영국의 무기감시단체인 분쟁군비연구소(CAR)는 지난 1월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시에 떨어진 미사일 잔해를 분석해 북한의 화성-11형 탄도미사일이라고 결론냈다.
해당 미사일 내 전자부품 대부분이 최근 수년 이내에 미국과 유럽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드러나 전문가들을 경악하게 했다. 부품 중 지난해 3월 제조된 미국 반도체도 포함돼있었다. 미사일 잔해에서는 북한의 연도 표기 방식으로 2023년을 가리키는 '112'라는 숫자도 보였다.
BBC는 "이는 북한이 불법적으로 조달한 핵심 부품을 국내로 몰래 들여와 미사일을 조립하고, 이를 러시아로 비밀리에 운송하며, 해당 미사일이 최전선에서 우크라이나로 쏘아지기까지 모든 과정이 불과 몇 달 만에 이뤄졌음을 의미한다"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오랜 기간 국제사회의 강한 제재를 받아온 북한이 이를 회피해 최신 부품을 구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다. 북한은 2006년부터 탄도미사일 생산을 금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제재를 받아왔다.
데이미언 스플리터스 CAR 부소장은 북한이 홍콩이나 중앙아시아 국가에 유령회사를 세워 이를 통해 무기 부품을 조달하고 중국과의 국경을 거쳐 북한으로 보내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영국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북한 전문가 조지프 번 선임연구원도 "우리는 유엔의 대북 제재가 무너져 북한의 숨통을 틔워주는 것을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북한제 미사일의 성능이 생각보다 좋다는 의견도 나온다. 북한은 옛 소련 스타일 무기를 1980년대부터 중동과 북아프리카 일대에 수출해왔지만 그간 정확도 등 성능이 뒤떨어진다고 여겨져왔다.
미들버리 국제학연구소의 북한 무기·비확산 전문가인 제프리 루이스 박사는 이번에 수거된 북한제 미사일이 러시아제보다 성능이 크게 나쁘지 않아 보이며, 무엇보다 매우 저렴하다고 말했다. 그는 위성사진으로 북한의 미사일 생산공장 현황을 추적해 북한이 1년에 미사일 수백개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북한은 러시아에 자국산 무기를 공급하는 대가로 석유와 식량을 제공받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미사일 원료나 전투기 등 군사 장비를 제공받을 수도 있고 극단적인 경우 핵무기 기술을 지원받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전쟁이 북한에 다른 나라로 무기를 수출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BBC는 분석했다.
루이스 박사는 북한이 이 무기들을 대량생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 많은 나라에 팔고 싶어 할 것이라며, 앞으로 북한이 중국·러시아·이란 등 미국과 반목하는 국가들 사이에서 주요 미사일 공급자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진=연합뉴스)